한글이 희망

영어(?) 권하는 사회

봄뫼 2008. 4. 25. 13:51

 

  오늘(4월 25일) 경향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전화 속의 남자는 우리 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네 아들이 내 아들을 때려 다 죽어간다. 뇌수술을 받아야 하니 빨리 300만원을 입금시켜라.” 수화기에서는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아내는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제 방에 있었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아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또 전화벨이 울렸다. 겁에 질려 수화기를 들 수가 없었다. 전화벨은 끊겼다 울리고, 끊겼다 다시 울렸다. 보이스 피싱(전화 금융 사기)은 뻔히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당해야 한다. (중략) 전화 속의 남자는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다. 아마 학교나 학원에서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살펴보니 주위 사람들도 거의가 보이스 피싱을 경험했다고 했다.

 

  보이스 피싱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한다. 글쓴이는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위 글에서 ‘보이스 피싱’은 괄호 안에 ‘전화 금융 사기’라고 설명 되어 있다. 보이스 피싱 이전에 우리말 ‘전화 금융 사기’가 있다. 보이스 피싱이라고 하면 사실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지만 전화 금융 사기라고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다. 구체적인 내용이야 설명을 들어야 하겠지만 뭔가 위험을 느낀다. 따라서 모호한 ‘보이스 피싱’보다 ‘전화 금융 사기’를 써야 한다.

 

  어떤 경우는 마땅한 우리말이 없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써오던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그렇고 컴퓨터가 그렇다. 하지만 얼마든지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데도 의도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걸 종종 본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게 되는 핸드레일과 스크린도어는 ‘손잡이’와 ‘안전문’으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그게 옳다.

 

  스쿨존은 원래 어린이보호구역이다. 최근 경기도에 ‘실버존’이 등장한 거 같던데 실버존 역시 ‘노인보호구역’이라고 하면 된다.

 

  ‘즐겨찾기’는 얼마든지 우리말로 할 수 있는 것을 한 사례이고, 전자우편 주소의 ‘골뱅이’는 할 수 없는 것도 해낸 사례이다. 이렇게 쉽고 편한 우리말을 멀리하고 알쏭달쏭한 부스러기 영어를 남발하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봐도 의도가 불순하다. ‘영어 권하는 사회’라도 한 편 써야 할 판이다. 끝으로 퀴즈 하나! ‘보이스 아이’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