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2008년 올해의 유행어

봄뫼 2008. 12. 27. 01:28

  뉴욕타임스가 발표한 2008년 유행어 중에는 '망하게 놔두기에는 너무 크다'는 'TBTF(too big to fail)'란 말이 있다.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의 위기를 상징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대마불사' 정도일 텐데, 대마불사의 신화가 미국에서도 통할지는 좀 두고 볼 일일 것 같다.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와 관련해서는 오바마의 선거 구호였던 '체인지(Change)'와 '오바마내이션(Obamanation)'이란 말이 있다. 형태상으로 '오바마 +국가'이니 오바마의 국가 혹은 오바마가 이끄는 국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영어 나라에서 왠지 우리의 '엠비정부'를 따라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이자카야택시(居酒屋タクシ)라는 말이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고급 공무원들이 심야 귀가 택시를 이용할 때, 택시 운전사들이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 달라'며 건네는 현금과 상품권을 받아 챙기고, 택시 안에서 술과 안주를 제공받았다고 한다. 어떤 공무원은 실제 택시요금보다 많은 금액을 장부에 적도록 해서 수년간 그 차액을 챙겼단다. 이런 고급 공무원들의 비리를 풍자한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 눈앞에서 펼쳐진 '직불금 사건'과 비교하면 어째 내용이 시시하고 쩨쩨하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들이 크게 사랑받았다(?). 강부자(강남 땅 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등이 이름을 날렸고, 연예인은 아니지만 강금실(강남의 금싸라기 땅 실소유자)도 그에 못지않은 명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새해 벽두를 장식한 이래 꾸준히 인구에 회자돼 온 말로 '프렌들리'가 있다. 비즈니스프렌들리로 시작해서 프레스프렌들리, 잉글리시프렌들리 등의 파생어를 낳으면서 한 해를 풍미했다. 문제는 이 말이 소통이 잘되는 이들 사이에서는 크게 애용되었지만, 말뜻조차 이해 못하는 이들과, 말귀가 잘 통하지 않는 이들과는 오히려 틈을 더 크게 벌리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기업 친화적, 언론 친화적, 영어 친화적이라고 하면 안 되나? 이 말을 처음 쓴 분이 우리 대통령인줄 알고 '왜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시지 않느냐'고 항의도 해볼까 했지만, 길을 지나다 보니 프렌들리의 원조가 놀랍게도 24시간 편의점 중 하나인 '지에스25'였다. "난 그냥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주민들이 이해를 못했다"고 변명 말고, "명색이 대한민국 기업이라면 간판 좀 바꾸쇼. 한국어와 한글로!"

 

- 이 글은 경인칼럼으로 발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