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선생님은 우리말 오가리를 모르십네까?”

봄뫼 2009. 9. 22. 14:42

“선생님은 우리말 오가리를 모르십네까?”

정재환 방송사회자,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금강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온정각 휴게소에서 금강산 온천으로 가는 한적한 길에 걸린 구호다. 북쪽에는 이런 구호가 많다. “우리 시대 영웅들의 참된 충실성을 따라 배우자.”라든가 “위대한 주체사상 만세.” 같은 글귀들이다. 그래서 북쪽을 ‘구호 공화국’이라고도 한다. 빨간색 글씨에 강렬한 인상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글쓴이가 어렸을 때 새마을 운동 구호를 한창 외치던 때의 우리 모습을 연상케도 된다. 지금 남쪽 거리에 이런 식의 구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물다. 잘 생각해 보면 어디선가 “바르게 살자!”라고 새긴 큰 돌을 본 것 같다. 그건 좀 비슷한가?    

  평양에 있는 ‘보통강려관’ 앞길에서 ‘수령복’이라고 쓴 비석을 하나 발견하였다. 수령복이란 게 뭘까? 안내원 동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수령님이 복을 주셨으니 복을 주신 고마우신 수령님께 고마움을 표하는 비석을 만들어 세운 거란다. 거리 곳곳에 걸어놓은 구호에서 길가에 세워놓은 자그마한 비석까지 북쪽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북쪽답다는 글쓴이의 생각은 바른 것일까? 여하간 북쪽은 고인이 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어버이처럼 떠받들고 사는 곳임에 틀림없음을 확인했다.

  문득 금강산에서 아리따운 북쪽 여성에게 혼난 일이 생각난다. 북쪽 여성 접대원 동무들의 시중(?)을 받으며 밥을 먹다가 불현듯 궁금해져서 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디서 사십니까?” 그런데 질문을 받은 접대원 동무의 표정이 좀 뜨악해지더니 교실 유리창 깬 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선생님이라고 해야 합네다.” “네?” 순간 놀랐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물었다. “아, 네 그렇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선생님은 어디서 사십니까?” 하지만 돌아온 답은 “모릅네다.”였다

  남북이 분단되고 50여 년 세월이 흘렀다. 본디 같은 말이었지만 서로 다른 체제 속에 살면서 말도 달라졌다. 이런 저런 구호가 생활의 중심에 서있는 언어생활이라든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뜻이 바뀐 말들이 그렇다. 본디 우리말 ‘동무’는 ‘벗’을 의미한다. 하지만 북쪽에서 동무는 ‘혁명 사업을 함께 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글쓴이는 남쪽에서 오랫동안 방송에 종사했지만 한 번도 북쪽의 뉴스 방송원들처럼 웅변하거나 선동하듯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본 적은 없다. 방송원의 이런 말투도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하지만 남북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같다. 달라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0년 6·15선언이 나올 당시 “시간이 긴장하고 있습네다.”라든가 “일 없습네다.” 같은 북쪽 말이 알려지고, ‘긴장하고 있다’는 말이 ‘시간이 없다’는 의미란 걸 알기 전까지, 또 ‘일 없다’는 말이 ‘괜찮습니다’라는 정중한 사양의 표현이란 것을 알기 전까지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아주 못 알아들어 낭패 볼 일도 아니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반세기 만에 만난 남북의 정상이 통역 없이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쓰는 말이 같다는 증거였다.

  돌이켜 보면 처음 평양에 갔을 때 보통강려관에 머물면서 인상적인 글들을 많이 보았다. 우선 보통강 ‘호텔’이 아닌 ‘려관’이었으며, 승강기에는 OPEN, CLOSE와 함께 ‘문 열기’, ‘문 닫기’가 적혀 있었다. 주차장에는 ‘휘파람’과 ‘뻐꾸기’란 자동차가 서 있었다. 지하 1층에 있는 매대에는 아이들이 먹는 과자가 진열돼 있었는데, 깨과자를 비롯해서 어린이과자, 봉학과자, 크림겹과자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크림’을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지만 겹과자의 ‘겹’은 분명 ‘샌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아이들이 먹는 과자의 이름을 우리말로 지으려는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고려식료가공공장에서 생산한 오가리과자가 눈길을 끌었다. ‘대체 오가리가 뭘까?’ 여성 판매원 동무에게 오가리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런 걸 묻는 글쓴이가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선생님은 우리말 오가리를 모르십네까? 무나 호박을 썰어서 말리면 오그라들지 않습네까? 그걸 오가리라고 하는 겁네다. 보십시오. 이 과자 모양이 오가리 같다고 해서 오가리라고 이름을 지은 거겠지요.” 또 한 방 먹었다. 서울에 돌아와서 우리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 사전에도 ‘오가리’란 말이 엄연히 있었다.

  한글문화 운동을 하면서 우리말을 애용하자는 얘기를 참 많이 했다. 알쏭달쏭한 외래어 남용하지 말고, 곱고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을 많이 써야 한다는 얘기를 핏대 세워가면서 까지는 아니더라도 목깨나 쉬어 가며 이야기 했었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겪으면서 북쪽의 우리말 애용 정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말 애용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도 ‘물은 셀프’ 대신에 ‘물은 스스로’라고 하면 되고, ‘랜드 마크’ 대신에 ‘마루지’, ‘핫이슈’ 대신 ‘주요쟁점’이라는 말을 쓰면 된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말이 통하면 사람이 통한다. 남과 북도 통한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통일의 밑거름이다. 그런데 요즘 남북 관계는 과거에 비해 좋지 않다. 남쪽은 남쪽대로 햇볕정책을 철회하고 ‘비핵, 개방, 3000’을 원칙으로 하는 대북 정책을 고수한다. 북쪽은 북쪽대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와 통일이다. 평양 거리에 걸린 숱한 구호에도 ‘자주 평화 친선’이란 글귀가 있었다. 글쓴이는 믿고 싶다, ‘구호 공화국’이 높이 내건 구호의 진정성을.

 

  이 글은 민족화해 40호에 실렸습니다.

  http://www.kcrc.or.kr/?doc=bbs/gnuboard.php&bo_table=z_movie&wr_id=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