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우리말 오가리를 모르십네까?”
“선생님은 우리말 오가리를 모르십네까?” | |
![]() 금강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온정각 휴게소에서 금강산 온천으로 가는 한적한 길에 걸린 구호다. 북쪽에는 이런 구호가 많다. “우리 시대 영웅들의 참된 충실성을 따라 배우자.”라든가 “위대한 주체사상 만세.” 같은 글귀들이다. 그래서 북쪽을 ‘구호 공화국’이라고도 한다. 빨간색 글씨에 강렬한 인상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글쓴이가 어렸을 때 새마을 운동 구호를 한창 외치던 때의 우리 모습을 연상케도 된다. 지금 남쪽 거리에 이런 식의 구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물다. 잘 생각해 보면 어디선가 “바르게 살자!”라고 새긴 큰 돌을 본 것 같다. 그건 좀 비슷한가? 문득 금강산에서 아리따운 북쪽 여성에게 혼난 일이 생각난다. 북쪽 여성 접대원 동무들의 시중(?)을 받으며 밥을 먹다가 불현듯 궁금해져서 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디서 사십니까?” 그런데 질문을 받은 접대원 동무의 표정이 좀 뜨악해지더니 교실 유리창 깬 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선생님이라고 해야 합네다.” “네?” 순간 놀랐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물었다. “아, 네 그렇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선생님은 어디서 사십니까?” 하지만 돌아온 답은 “모릅네다.”였다 돌이켜 보면 처음 평양에 갔을 때 보통강려관에 머물면서 인상적인 글들을 많이 보았다. 우선 보통강 ‘호텔’이 아닌 ‘려관’이었으며, 승강기에는 OPEN, CLOSE와 함께 ‘문 열기’, ‘문 닫기’가 적혀 있었다. 주차장에는 ‘휘파람’과 ‘뻐꾸기’란 자동차가 서 있었다. 지하 1층에 있는 매대에는 아이들이 먹는 과자가 진열돼 있었는데, 깨과자를 비롯해서 어린이과자, 봉학과자, 크림겹과자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크림’을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지만 겹과자의 ‘겹’은 분명 ‘샌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아이들이 먹는 과자의 이름을 우리말로 지으려는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말이 통하면 사람이 통한다. 남과 북도 통한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통일의 밑거름이다. 그런데 요즘 남북 관계는 과거에 비해 좋지 않다. 남쪽은 남쪽대로 햇볕정책을 철회하고 ‘비핵, 개방, 3000’을 원칙으로 하는 대북 정책을 고수한다. 북쪽은 북쪽대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와 통일이다. 평양 거리에 걸린 숱한 구호에도 ‘자주 평화 친선’이란 글귀가 있었다. 글쓴이는 믿고 싶다, ‘구호 공화국’이 높이 내건 구호의 진정성을. |
이 글은 민족화해 40호에 실렸습니다.
http://www.kcrc.or.kr/?doc=bbs/gnuboard.php&bo_table=z_movie&wr_id=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