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창후상회
봄뫼
2010. 1. 19. 14:08
강화도에 ‘창후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얼마 전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촬영차 갔었습니다. 촬영 순서를 기다리다가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마실까 해서 들러보니 마침 '창후마트'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를 보고 계셨는데, 처음에는 못 알아보시더니 계산을 할 때 아는 척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좀 쑥스러웠지만 촬영하러 왔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안쪽에서 아저씨가 나오시더니 반색을 하시면서 왕년에 팬이셨다고, 달력 뒷면에다 사인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쑥스러웠지만 거절할 수 없어 사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한글이 희망’이라고 쓰고, 요즘 한글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가게 이름이 창후 마트지요?”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창후 상회입니다”하고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그 순간 잠시 멍했습니다. “아 그렇지! 과거에는 모두 상회였지.”
별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게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주변의 모든 가게들이 ‘슈퍼’나 ‘마트’ 같은 이름을 간판에 달고 영업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상회’라는 이름이 아직 살아있었던 겁니다. 구멍가게, 상회, 상점, 그러고 보면 모두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마트니 슈퍼니 하는 외래어에 제자리를 내주고 그렇게 스러져 가도 되는 것인지 오랫동안 ‘구멍가게’와 ‘상회’란 말의 주인이었던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