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 박물관에 전시할 한글 유물을 찾아라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을 국보 제1호로 지정하고 고궁박물관에 전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숭례문이 귀한 문화재이긴 하지만 국보 1호라는 데에는 다소 의아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니, 훈민정음이 국보 1호라면 의아하게 생각할 이도 이의를 제기할 이도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는 않고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을 고궁박물관으로 옮기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실까?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이 발견되었을 때 고미술품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 선생이 거금 3,000원을 주고 그 책을 샀다. 일설에는 구입가가 11,000원이었다고도 한다(당시 논 1마지기 값이 100원이었다.). 그만큼 비싸고 비싼 만큼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간송은 훈민정음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해방 이후 공개했으며, 6·25때는 훈민정음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고 피난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훈민정음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훈민정음을 볼 수 있지만 복제품이고, 진짜는 지금도 간송미술관에 있다. 늘 공개하는 것도 아니어서 어쩌다 열리는 특별전이 아니면 보기도 어렵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켜낸 간송의 삶은 숭고하지만 그 귀한 문화재들을 후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국보급 문화재들의 보존 상태도 걱정스럽다. 훈민정음을 고궁박물관으로 이관 전시하자는 의견도 이런 안타까움과 걱정에서 나왔을 거다.
2012년 말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한글박물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난 2010년 한글박물관 건립에 관한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고, 그 동안 부지 선정과 설계 등이 끝나 이제 4월이면 첫 삽을 뜨게 된다. 박물관에 전시할 한글 유물을 열심히 수집하고 있다. 머지않아 한글에 관한 모든 것을 전시하고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전용 박물관이 생긴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한글박물관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국보 제70호 훈민정음을 볼 수 있을까?
어쩌면 ‘훈민정음’뿐만 아니라 세종 때 만든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같은 책들도 한글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던 추사 김정희가 가족들과 나눈 편지가 한글 편지였음을 알지만 실물을 본 적이 없어 궁금하고,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도 원이 엄마 편지도 보고 싶다. 언젠가 해인사 박물관에서 한글이 적힌 백자를 본 적이 있는데, 한글 도자기를 비롯해서 한글 그림, 한글 유기, 한글 떡살 같은 한글 유물들도 모두 한자리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유물들은 단순히 한글이 새겨져 있다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글과 선조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며 한 삶을 보냈는지를 실물로 보여주는 귀한 증거가 될 것이다.
얼마 전 광주에 살고 있는 서수열 님은 평생 수집한 고소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 ‘장끼전’, ‘춘외춘’을 비롯해서 대한제국 기에 발행된 교육 지침서인 ‘유년필독석의’ 등 희귀 자료와 일제시대·미군정 시절에 발간된 ‘조선어 독본’(1~7권), ‘조선말 큰사전’ 초간본 등 365점을 한글박물관에 기증했다. 한글운동가 이봉원 님은 한글 운동 관련 회보, 요람, 펜던트 등을 기증했고, 10명의 소장자들이 평생 수집한 자료를 한글박물관을 위해 흔쾌히 내놨다. 글쓴이는 기증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가슴이 아프지만, 혹시 한글 자료를 갖고 계시다면-가가호호 방문해서 함부로 뒤지고 확인할 수 없으니-우리 모두의 한글박물관 건립을 위해 주저 말고 알려 주시고 기증해 주실 것을 감히 부탁한다.
※연락 주실 곳 : 문화체육관광부 국어민족문화과 02-3704-9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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