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일사일언] 세종대왕은 왜 광화문을 등지고 계실까

봄뫼 2011. 4. 7. 07:17

  난생처음 광화문을 보았을 때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감탄했었다. 모습보다 감동적인 것은 한글로 쓴 '광화문' 현판이었다. 남에게 물어보지 않고 내 힘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래의 독자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그때는 보통 간판에도 한자가 많아서 참 당황스럽고 고생스러웠었다. 그래서 한글 '광화문'은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었다.

  몇 년 전 광화문 복원 얘기가 나오더니 광화문의 현판 글자가 한자로 바뀌었다. 게다가 한자를 적는 구습에 따라 '광화문(光化門)'이 아닌 '문화광(門化光)'이 되었다. 중국에 조공을 가던 시대로 회귀한 것 같아 속이 쓰렸다. 한자로 적힌 '門化光'을 읽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이 한자를 우리 글자로 오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요사이 거리를 어지럽게 도배하고 있는 영어 간판들처럼 'Gwanghwamun'이 아닌 것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그런데 건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현판에 금이 갔다. 졸속 복원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고, 금강송도 아니고 건조도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자를 한자로 써서 그렇다는 주장은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한글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렇게들 푸념하기도 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동상이 '광화문을 등지고 돌아앉아 있는 이유'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다.

  어차피 현판을 새로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글자 문제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했으면 한다. 어떤 글자가 좋을까?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답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4월 7일자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실렸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06/20110406027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