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지만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는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렸다. 쓰고 보니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모처럼 어울렸다. 동우 연극 끝나고 대학로에 있는 통영어물전이라는 술집에서 꽤 오랫동안 마시고 떠들고 놀았다. 나야 뭐 술을 마시지 않지만 한 자리에서 쭉 같이 얼굴 보고 웃고 연극에 대해서도 연기에 대해서도 음악에 대해서도 그리고 또 조명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선배다운 얘기도 하고 재밌었다고 수다를 좀 떨었다.
오픈 유어 아이즈는 좋은 작품이다. 동우가 하는 연극이라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작품 아닐까? "눈이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혜숙이의 대사는 어느 새 좀 유명해진 것 같다. "저는 여러분을 볼 수 없지만 여러분이 주시는 박수 소리와 웃음 소리만으로도 행복합니다."라는 동우의 인삿말도 귓가에 맴돈다.
어제로 네 번째 봤지만 오픈 유어 아이즈는 볼 때마다 새롭다. 특히 어제는 초연 때와 달리 배우도 바뀌어서 시작부터 새로운 느낌이었다. 등장하는 배우들의 얼굴이 다르고 배우들의 말씨도 다르고 연기하는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도 달라졌다. 초연 때는 팝송이 많았는데 모두 우리 가요로 바뀌었다. 꼭 그게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극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지만 새로운 것은 또 그 나름대로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해 준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극이 주는 웃음과 감동이다.
오픈 유어 아이즈는 아주 슬픈 얘기지만 웃기는 작품이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마음 놓고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제는 초연 때처럼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앞자리에 앉은 여성들도 조용히 눈가를 훔치는 게 보였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지만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5년 전이나 10년 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웃을 때마다 허옇게 드러나던 이를 보며 또 웃고 웃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우는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마흔일곱이나 마흔여덟쯤에서 멈춰있을까? 부쩍 나이 들어 보이는 지금보다 한결 젊게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동우에게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지만 그냥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내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주고 싶어도 동우는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지만 그래도 보이면 좋겠다. 지금도 보고 싶은 게 많지 않을까? 어머니, 아내, 지우, 누나, 친구들, 집, 길거리, 건물,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방송국 건물, 동료들의 얼굴, 극장, 객석, 분장실, 화장실, 피아노, 소파, 옷장, 관중들의 얼굴, 배우들의 얼굴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가받다가 동우가 내게 물었다. "형님, 현아가 예뻐요?" "그럼, 예쁘지. 늘 같이 있으면서도 넌 볼 수가 없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답답하겠니?" 정말 얼마나 답답할까? 바로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이 주시는 박수와 웃음만으로도 행복하다지만 그 관객들의 모습이 한 사람 한 사람 다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박수와 환호로 뜨거운 극장 안의 열기를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공연 안내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1005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