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한글박물관 드디어 ‘첫 삽’을 뜨다
봄뫼
2011. 7. 14. 11:32
초등학교 3학년 때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공사를 시작하던 날 건축업자였던 아버지는 손수 첫 삽을 떴다. 그 동안 남의 집만 짓다가 우리 집을 짓는 대 역사였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누가 봐도 날아갈 듯 가볍고 춤추듯 신명나는 삽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튼튼하고 멋진 집을 짓기 위해 벽돌 한 장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담벼락을 바라보며 가슴이 설렜다.
아버지는 첫 삽을 뜬 이후로도 일꾼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고, 어머니도 새참을 내거나 일꾼들 시중을 들며 공사판을 지켰다. 일꾼과 집주인이란 구별이 따로 없었다. 모두 하나가 되어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았다. 삽질을 시작하고 얼마 후 장마가 시작되어 자주 공사가 중단되었었지만 다행히 추위가 닥치기 전에 새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고, 새 집으로 이사한 첫날의 감격은 어린 마음에도 아주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른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아이들은 돼지머리와 떡을 씹으며 온 동네가 집이 완공된 걸 축하하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 날은 밤늦도록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새 집이라 모든 게 다 깨끗해서 좋았고, 더 이상은 밤에 화장실 가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새 책상도 들어와 흥분도 했지만, 왠지 밥도 더 맛있었고 잠자리도 더 편안했다. 비록 작지만 소중하고 편안한 우리 집에서 난 자라났고 조금씩 철이 들었으며 이런저런 꿈을 꾸었다. 물론 그 때 꾸었던 꿈들은 지금 내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그 집은 포근한 보금자리였고 온갖 상상력과 꿈을 키워준 소중한 장소였다. 그래서 ‘삽질’에 대한 유년의 내 기억은 아주 달콤하고 건설적이며 희망적이다.
7월 13일 수요일 아침,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서 한글박물관을 짓는 첫 삽을 뜬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일이다. 한글의 나라 대한민국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대 역사다. 짚신박물관에서 옹기박물관까지 온갖 박물관이 다 있지만 정작 한글박물관이 없었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은 곧 과거가 될 것이다. 한글박물관이 들어서면 대한민국의 국격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2012년에 완공될 한글박물관은 덩치가 큰 박물관은 아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아담한 자태를 띨 것이다. 하지만 규모는 작아도 그 안에 들어설 전시, 체험, 학습 등의 공간은 박물관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지식과 정보와 즐거움과 기쁨과 휴식과 행복과 꿈을 줄 것이다. 한글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정수인 한글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장소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것이다.
한글박물관을 찾는 외국인들은 세종의 한글 창제에 감탄할 것이고 우리가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 국가임을 실감할 것이다. 한글박물관은 우리의 자랑이 될 것이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만인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될 것이다. 후손들은 한글박물관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희망찬 한글의 미래를 생각하고 한글로 이룩할 행복한 미래와 선진 문화 국가 대한민국을 꿈꿀 것이다.
--- 이 글은 공감코리아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