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정말로 발음까지 쏙 빼야 통할까?

봄뫼 2011. 11. 24. 11:10

  하일 씨의 본디 이름은 로버트 할리였다. 알다시피 그는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성마저 개창했다. 그의 본관이 영도인 것처럼 그는 부산말이 유창하다. 글쓴이가 방송에서 잘 나가던 때 하일 씨와도 자주 만났다. 워낙 재능이 많은 이였지만, 뜻밖의 부산 사투리에서 더욱 정겹고 친근한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의 한국어는 완벽하지 않다. 가끔은 그라고예 키가 좀 적어예처럼 작다적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미국식 영어에 부산 사투리가 다소 강하게 뒤엉킨 그런 억양과 악센트였다. 그래도 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서로 눈높이를 맞춘 일대일 대화가 아니라 다수의 시·청취자를 청중으로 두고 하는 대화에도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이다도시 씨는 프랑스에서 왔다.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어느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다가 프랑스어 명강사이자 한국말을 아주 잘 하는 미모의 프랑스 여성으로 떴다. 그녀의 한국어는 어휘가 풍부하고 유창하다. 이다도시 씨하고는 텔레비전뿐만이 아니고 라디오에서도 반년쯤 방송을 같이 했지만 역시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라디오라 그랬는지 간혹 잘 못 알아듣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의 한국어는 프랑스제 향수를 잔뜩 뿌린 것 같은 한국어여서 도저히 순정한 한국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잘 못 알아듣겠다는 청취자의 지적은 바탕에 깔려있는 프랑스식 억양이나 악센트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테제베처럼 빨리 말한다.

 

  지금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이참 씨도 한국어를 참 잘한다. 교육방송에서 코리아코리아를 진행할 때 고정 출연자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 “에이 아니에요.” 하면서 한국에 와서 한 10년 사니까 그제서야 한국어를 조금 알 것 같더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한국어는 하일 씨나 이다도시 씨처럼 거침없이 나오는 한국어는 아니다. 갑갑할 정도로 뜸을 들이지는 않지만 신중하게 또박또박 말한다.

 

  물론 그래도 좀 부족하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 대개 2% 정도를 얘기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20%를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참 씨의 한국어가 다소 투박한 독일식 억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훌륭한 한국어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그는 외국인이었다.

 

  외국어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말하고, 강의는 물론이고 방송에서 농담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 해도 소리까지 빼다 박기 어렵다는 것을 세 사람의 유창한 한국어에서 느낀다. 미수다에 나왔던 크리스티나, 도미니크, 사유리, 구잘 등등의 외국인들이 모두 비슷하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당신들 발음이 이상해.”라고 따지거나 추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면 영어만큼은 발음까지도 원어민하고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원어민 강사 초빙에 수백 억대 영어 마을 건립에 조기 유학에 혓바닥 수술과 원정 출산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주저함도 없는 엽기적 원지음 강박증은 신기하다 못해 기괴하다.

 

- 이 글은 위클리 공감 2011년 11월 16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