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성재훈의 우리말 편지 중

봄뫼 2012. 2. 6. 12:30

2. 지난 토요일 두 번째로 보내드린 편지, '노인'을 '시니어'로 갈음하자는 법률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편지에 대한 '박 남' 님의 댓글입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멀쩡한 우리말 놔두고, 그렇게 붙일 말이 없어서 영어 senior를 시니어로 표기만 해서 부르자구요?

그럼 성인이란 말도 聖人인지 性人인지 헷갈릴 수 있으니까 어덜트(adult)로 바꿉시다.
말도 말(language)인지 말(horse)인지 헷갈릴 수 있으니까 아예 이참에 랭귀지로 바꿉시다.
눈도 눈(eye)인지 눈(snow)인지 헷갈릴 수 있으니까 그냥 아이로 바꿉시다.
아참! 그런데 이 아이가 아이(eye)인지 아이(kid)인지 헷갈릴 수 있으니까, 뒤의 아이는 키드로 바꿉시다.
동사무소도 주민센터로 바꾼 마당에, 집도 하우스로 바꾸고, 차도 카로 바꿉시다.
어떻습니까? 정말 보기 좋죠?
그냥 한국말로 아이들이라고 하면 어딘가 한국전쟁 시절 넘쳐나던 고아들이 연상될 지 모르니, 키드라고 하면 좀더 세련되고 영어도 잘 할 것 같이 들리지 않습니까?
어느 개그맨의 우스개 소리처럼, 그야말로 "기가 막힉고 코가 막힌다, 그죠?"

이런 몰상식 무개념 한국인들이 요즘 우리사회에 넘쳐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국민은행은 왜 KB은행이 되어야 합니까? 아예 KB뱅크라고 하시죠?
기업은행은 왜 IBK은행이 되어야 합니까? 차라리 IBK뱅크라고 하시죠?
한국산업은행이라고 하면 경쟁력에 무슨 문제라도 생깁니까? 그래서 KDB은행이라고 하는 겁니까?
한국전력공사라고 하면 전력 수급에 차질이 있습니까? 그래서 KEPCO라고 하는 겁니까?
그런데 왜 지난 여름엔 전력 수급에 "블랙 아웃" 현상이 벌어졌나요?
조만간 청와대를 블루하우스, 국회의사당도 케이엔피(KNP, Koera National Assembly)라고 할 날이 멀지 않았겠죠?

기독교방송이라고 하면 되지 왜 꼭 씨비에스라고 하시나요?
문화방송이라고 하면 되지 왜 꼭 엠비시라고 하시나요?
한국방송이라고 하면 되지 왜 꼭 케이비에스라고 하시나요?
대한토지주택공사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LH공사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지나가는 노인을 붙잡고 물어봅시다. 대한토지주택공사가 뭐하는 곳인지 아느냐고.
어느정도 의미 있는 답변을 내놓으실 겁니다. 우리말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노인들을 시니어로 바꿔 부르면 LH공사가 뭐하는 곳인지 알아들으실까요?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나라에서 쿠폰(coupon)을 발행하더니 언제부턴가 바우처(voucher)를 발행한다네요.
그냥 우리말로 상품권이나 식권, 무료교환권이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요?
이렇게 개나소나 뭐든지 영어로 바꿔 부르면, 도대체 한국어는 지구상에서 누가 쓰나요?
이토록 자기 문화, 자기 모국어를 홀대하는 국민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정말 부끄럽지 않으세요?
아예 국어를 영어로 바꾸든지, 아니면 우리 몸과 정신 그 자체인 한글을 더욱 사랑하든지,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참고로 외국인들은 이런 영어 간판, 우스꽝스런 콩글리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한국인들이 점점 영어권 문화식민지가 되어 가는구나...하면서 좋아할까요?
그러면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한국을 찾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자신들과 닮은 모습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한국적인 것, 한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만의 문화와 전통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이자 얼굴인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형 호텔체인을 만들었답니다. 그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베니키아"랍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인가요?
이 말의 한글 어원이나 유래를 아시는 분 설명 좀 해주세요.
'용'의 순우리말이 '미르'인 건 알아도, 베니키아의 어원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텔 잡을 때 좀더 편안해지셨답니까?

우리 제발 정신 좀 차립시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한글,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들이 칭송해 마지 않았다는 한글을, 우리는 왜 제 손으로 이렇게 훼손하는 겁니까?
우리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소중히 가꾸고 보존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의 대외경쟁력은 더욱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설이나 추석에 차례상만 정성들여 모실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우리 겨레의 얼인 한글을 더욱 사랑하는 한국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