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파이팅' 합시다
일본 청소년 드라마 중에 '고쿠센'이라는 게 있다. 나카마 유키에라는 여배우가 문제아들의 담임으로 등장하는데, 실물은 어떤지 모르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은 그다지 미인은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그녀의 제자들에 대한 애정은 뜨겁기 그지없다. 특히 수십 명의 깡패들을 맨손으로 때려눕히고 위기에 처한 제자를 구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제자들을 격려하는 장면에서 매번 똑같은 구호 '화이토'를 외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 사람들도 외래어 좀 쓴다. 행복하다는 말은 '하피다'라고 하고, 당황하거나 공황 상태가 됐을 때는 '파니크'란 말도 자주 쓴다. '화이토'는 우리의 '파이팅'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드라마에서 단골로 나오는 '화이토'라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곳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의사당의 정치인들이건 운동선수들이건 '간바레'를 외친다. 우리말로 바꾸면 '힘내' 정도일 터인데,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파이팅을 외치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과거에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외래어를 많이 쓴다고 흉을 봤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역전된 듯하다. 쿨하다, 포스가 느껴진다, 레알, 스펙, 올인 같은 일상어에서부터 스페셜, 코너, 섹션, 버라이어티, 데스크, 나이트, 포커스, 줌인 같은 방송 언어, 싱글맘, 워킹맘, 슈퍼맘 같은 지칭어뿐만 아니라 득템, 개드립, 본캐 같은 잡종에 이르면 머리가 핑핑 돈다. 이런 상황이니 '파이팅 갖고 뭘 그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뵌 어떤 어르신이 몹시 역정을 내셨다.
"정치인들, 제발 그놈의 파이팅 소리 좀 못하게 해요!"
"네? 제가 얘기한다고 들을까요?"
-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실렸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7/2012101703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