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한글운동은 외로워요!
지난 일요일(8월 5일) 서울 기온이 36.7도를 기록했다. 18년 만에 가장 더운 날씨였다는 기상청의 공식 발표가 없다고 하더라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무더운 날씨였다. 살인적인 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폭염, 불볕, 열대야 같은 말들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그 중 반가운 단어 하나가 ‘시원차림’이다. 처음에는 ‘쿨비즈’란 말을 썼다가 우리말로 바꿨다. 이런 거 바꾼 사람 상 좀 줘야하지 않을까?
1999년 9월 어느 날, KBS가 방송언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언어순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한 ‘제1회 KBS 바른언어상’ 수상자로 임병걸 일본특파원(보도부문), 엠시 정재환(진행부문) 씨, 탤런트 임동진(연기부문) 씨 등 3명이 선정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수상 소식이었다. ‘그런 상이 있었나? 내가 수상자?’ 비록 작은 상패와 꽃다발을 주는 조촐한 상이었지만, 연기대상이나 국무총리상을 받았던 때보다 더 기뻤다.
더욱 즐거웠던 것은 개그맨 정재환이 한글운동에 나선 것을 보고, 상을 만들어서 방송종사자들을 격려하면 좋겠다고 해서 ‘바른언어상’을 제정하게 되었다는 뒷얘기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상 후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그러면 애당초 정재환이 상 주려고 제정한 상 아니냐,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고 힐난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글쓴이의 활동을 계기로 만든 상이니 초대 수상자가 글쓴이로 결정된 것은 자연스런 결과 아니었을까? 그래도 상을 받은 당사자가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누구한테 써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당시 관계자를 찾을 수도 없으니,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할 수밖에 없다.
여하간 글쓴이 덕분에(?) 우리말 사랑을 실천하는 연예인들을 격려하는 상이 하나 더 생겼으니 이것도 글쓴이의 업적(?)이다. 그 후로는 유열, 김미숙, 송해, 박미선 씨 등이 진행자 부문에서 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을 받은 순서에 따라 한글 사랑 온도나 바른 언어 사용 순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니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그리고 수상자 명단에 아나운서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나운서를 처음부터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나운서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사실 글쓴이는 상복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1988년엔가 ‘청춘만만세’에서 김은태와 함께 ‘구르몽과 시몬’이란 콩트로 조금 얼굴을 알리게 되어, 어느 분야든지 딱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상 후보가 되었다. 봄여름 내내 경쟁자가 없었는데, 가을에 갑자기 후배 김상호가 ‘일요일밤’을 통해 떴고(뭔가 유행어가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는 글쓴이의 석패였다. 결국 연예계에 입문해서 연기자로서 받은 상은 1990년 연말 연기대상에서 받은 ‘우수연기상’이 유일하다.
그런데 정말 엉뚱한 상을 하나 받았다. 1996년에 한국방송공사에서 ‘공개 발명 아이디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발명가들이 출연해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발명의 세계라는 것이 워낙 기발하고 경이로운 것이라서 매회 신선하고 참신하고 독특하고 기이한 발명품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때 발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다는 아니지만 현대인들이 편리하게 쓰고 있는 많은 수의 발명품이 일본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일본이 잘 사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걸까? 우리도 좀 더 분발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회를 거듭하면서 참신한 발명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글쓴이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전분 이쑤시개가 첫 선을 보인 것도 바로 공개 발명 아이디어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쑤시개는 뾰족하고 딱딱해서 자칫 실수하면 잇몸에 상처를 낼 수 있고, 쓴 다음에는 음식물에 섞여 돼지 등 동물의 사료에 들어가 동물들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날카로운 이쑤시개가 몸속에 들어가 식도며 위며 장을 마구 찌른다고 상상하면 정말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그런데 전분으로 만든 이쑤시개는 처음에는 딱딱하지만, 물기가 닿으면 점차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동물에게도 안전하다는 것이 발명가의 설명이었으니 참으로 감동과 사랑의 이쑤시개였다. 그 발명가께서 얼마나 큰돈을 버셨는지 모르지만, 몇 년 사이 널리 대중화가 되었다.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명의 날에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상을 받아 마땅한 많은 분들께 허리 숙여 사과드린다.
엉뚱하게 수상한 국무총리상을 빼면 글쓴이는 상복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한글 사랑에 빠지면서부터 상을 줄줄이 받았다. 2000년에는 여성민우회 푸른언어상을 받았고, 교육방송에서는 좋은언어상을 받았다. 상은 아니지만, 한글학회의 우리말 지킴이로 위촉되었고, 돌아가신 허웅 회장님께서 직접 금메달을 걸어주셨다. 금메달은 올림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과분한 영광을 누린 것도 모자라 어느 해인가는 한글 발전에 기여했다고 해서 문화관광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말 그대로 과분했다. 그저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자고, 외국말이나 외래어 같은 거 많이 쓰지 말고 우리말을 우선 쓰고 많이 쓰자고, 우리말을 잘 지키고 잘 키워나가자고 한 것이 고작이었는데 말이다.
말로 먹고사는 방송사회자로서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사명감이었을까? 글쓴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방송종사자들이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출연자가 틀린 말을 쓰면 시청자가 틀린 말을 따라할지 모른다. 출연자가 막말하면 시청자도 막 갈지 모른다. 잘못된 자막, 엉터리 자막이 우리말을 훼손한다.’ 같이 일하는 작가들에게도 “대본은 작가의 얼굴입니다. 대본을 아름답게 써주세요.”라고 부탁했고, 방송에 대한 최종 책임을 피디가 져야 하는 것처럼 방송언어에 대한 최종 책임 역시 피디에게 있으니 출연자나 작가들을 잘 살피고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고,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해 주는 이도 있었다. 출연자들은 이전보다 언어 사용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고, 작가들도 대본을 작성할 때 철자법, 띄어쓰기에 더욱 주의를 하는 것 같았다. 말실수도 줄고 이상한 자막이 나가는 경우도 줄었다. 그런데 글쓴이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도 그 때였을 것이다.
교통 법규를 잘 지키자는 얘기는 조금도 틀린 얘기가 아니지만, 막상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된다고 붙잡으면 답답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 빨간불이어도 차가 오지 않으면 괜찮다고 오히려 이쪽을 설득하기도 한다. 그래도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붙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횡단보도 앞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혼자서 길을 건너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돌아가신 오리 전택부 선생님은 평생을 기독교 운동과 한글운동에 몸을 바치셨다. 기독교를 널리 퍼뜨리고 한글을 널리 퍼뜨리셨다. 한글 사랑의 선봉에서 많은 일을 하셨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철자법을 간소화해야 한다고 철자법 파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그 부당함을 토로하셨다.
하루는 이승만 대통령이 원로 기독교인들을 경무대로 초청하여 다과를 주재하던 도중 “한글 철자법이 어려운데 성경처럼 소리나는 대로 쓰면 좋지 않으냐”고 하자 아부를 잘하는 목사들이 “그래야죠”하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당시 저는 30대였는데 “젊은이들과 학자들은 한글 맞춤법에 따르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택부 선생님은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일에도 헌신하셨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한글날을 국경일로 해달하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그런데 주위에는 선생님의 한글운동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 운동만 하시면 좋을 텐데, 한글운동은 왜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단다. 한글사랑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 굳게 믿으셨지만, 언젠가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한글운동은 외로워요!”
- 이 글은 민족21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