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간지치킨

봄뫼 2016. 10. 9. 23:13

  이 글은 치킨 광고가 아니다. '간지치킨'은 먹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을 생각이 없다. 여하간 아래는 광화문역에 붙어 있는 광고다.



  사람들이 '간지'를 좋아하니, 갖다 붙였겠지만 참으로 씁쓸하다. 벌써 오래 전에 이 말은 일본말이니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하긴 쓰라거나 말라거나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다시 한 번 '간지'의 유래를 밝혀 둔다.


  20대 때 방송국에 들어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일본말을 엄청 쓴다는 거였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런 언어 생활에 대해 단 한 사람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하간 간지도 방송국 안에서 쓰는 그 많은 일본말 중 하나였다. 프로그램 만들면서 '간지가 좋다거나 죽인다거나' 하는 식으로들 썼는데, 일본어 사전에서 간지를 찾아보니 ’感じ(칸지)’라고 적고, 뜻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그냥 느낌이 좋다거나 죽인다거나 뭐 그런 얘기다.


  원래 공중파 3사 시절에는 방송 언어에 대한 관리랄까 감독이랄까 그런 게 없지 않아서 방송국 안에서만 썼는데, 케이블 채널이 많아지고, 언젠가부터 일부 출연자들이 방송에서 이 말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방송이란 게 전파성이 강하다 보니, 차츰 대중들도 이 말을 따라 쓰기 시작했다.


  그 후 목격한 놀라운 사건 하나는 2002년쯤 4.19 혁명 기념 행사에 참가한 어느 대학교 학생회가 '간지 0대 학생회'라는 알림막을 행사장에 건 것이었다. 4.19가 어떤 날인가?


  또한 놀라운 사건은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 말을 썼다는 거였다. 한동안 노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인터넷에 오르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 '노간지'라는 별명이 등장한 것이다. 간지를 '느낌이 좋다, 멋있다'는 뜻의 신조어 정도로 생각한 이들이 멋모르고 애정어린 마음으로 붙인 별명인줄은 알지만,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그 후로 간지 선글라스, 간지 모자, 간지 브라 등등의 선전 문구가 상점가를 장식하더니 급기야 상품명에까지 '간지'가 들어갔다. 일본말을 배우는 것과 우리말 속에 일본말을 섞어 쓰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이제는 얘기할 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