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우리 같이 삽시다(영화 시소를 보고)

봄뫼 2016. 11. 2. 01:10

   가끔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주로 한글에 관한 글을 쓴다. 영화에 관한 글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영화 시소는 앞을 못 보는 남자와 앞만 볼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다. 사실 동우는 아주 가까운 후배다. 동우가 시력을 잃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과연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크린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낯선 남자가 등장해 뒤에서 휠체어를 미는 동우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일러주고 있었다. “10, 10앞을 보지 못하는 동우는 자꾸만 휠체어를 길 바깥으로 민다. 그래도 앞만 볼 수 있는 남자 임재신은 침착하게 10를 반복하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시력을 잃게 된 동우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던 임재신은 자신의 눈을 주겠다는 편지를 썼다. 앞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근육병 환자가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것을 주겠다는 거였다. 미친 걸까? 더 이상 살기 싫어졌나? 동우는 울었다고 했다. ‘주겠다는 눈도 의학적으로 받을 수 없기에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두 남자가 서로를 좀 더 알기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아름다운 제주의 산과 바다가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누런 갈대숲을 보지 못하는 동우와 보면서도 만지지 못하는 재신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서있고, 허공을 지나는 제주의 거센 바람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집어삼킨다.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화면 속의 동우와 재신은 제주도보다 아름답다. 동우는 재신에게 우리 같이 삽시다라고 말한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같이 살자고 말한다. 가끔 삶이 힘겹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심할 때에는 죽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동우와 재신 앞에서는 감히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 앞도 볼 수 있고 팔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우리는 실은 너무 쉽게 편안하게 살고 있다. 덕혜옹주의 손예진이나 밀정의 한지민 같은 미인을 볼 수 없는 것이 좀 섭섭하지만, 시소는 눈과 마음을 씻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