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앗, 스마트키! 스쿠터 스마트키를 잃어버리고...

봄뫼 2018. 7. 27. 21:00

  재미있는 낱말풀이 녹화 전에 상암동에서 후배랑 밥을 먹기로 했다. 일찌감치 집을 나와 스쿠터를 몰고 아라뱃길을 달렸다. 오전 11시, 아직 한낮의 햇볕이 아니어서인지 시원한 강바람이 상쾌했다.


  20분쯤 달려 개화산역 앞을 지날 무렵, 계기반에서 스마트키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어, 이거 뭐지?' 스쿠터를 길가에 세우고 받침대를 펴니 저절로 시동이 꺼졌다. 스쿠터에서 내려 주머니를 뒤졌으나 키가 없었다. '어라, 어디 두었지?' 운전대 아래 수납함을 열었으나, 키는 없었다.


  뒷자리에 단 탑박스를 열려고 했으나, 키가 없으니 열 수 없었다. '어라, 이거 키가 어디갔지?'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생각했다. '혹시 가방을 탑박스에 넣고, 키를 뽑지 않고 그냥 달린 거 아냐?'


  불행하게도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탑박스에 키를 꽂은 채로 달렸고, 스쿠터가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빠져나오다가 어딘가 도로 위에 떨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키가 없으면 시동을 걸 수 없다. 탑박스에 들어 있는 가방도 꺼낼 수 없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헬멧과 휴대전화뿐이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돈이 없어 택시도 탈 수 없다.


  야마하 센터 이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센터 여름 휴가라 지금 일본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도로 위에 떨어졌을 텐데 찾기 어려울 것이고, 지나가던 차가 밟았으면 고장났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여하간 월요일이나 되어야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절망적이었다.


  일단 전화를 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도로 위를 유심히 살피면서 후배한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점심 먹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다. 보험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후배의 말에 긴급서비스에 전화를 했지만, 이륜차는 긴급 출동이나 견인 등 서비스를 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500m를 뜨거운 지열이 올라오는 도로 위를 살피며 걷다가, 탑박스 안에 든 가방이라도 꺼내려면 일단 집으로 돌아가 여분의 탑박스 열쇠를 가져와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후배한테 전화를 걸어 지금 좀 올 수 있느냐고 했더니, 바로 출발하겠다고 했다. 개화산역으로 오라 하고 다시 개화산역으로 돌아와 스쿠터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후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정류장 앞 벤치에 앉았을 때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20분쯤 기다리니 후배가 도착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선배님, 오늘 참 재밌는 날이네요." 후배가 웃는 얼굴로 농담을 했다. "그래, 좌우지간 오늘 우리는 만날 운명인 거지."  

 

  후배 차를 타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가면서 반대편 도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후배도 운전을 하면서 같이 도로를 살폈다. '어딘가 떨어졌을 텐데...'


  "나는 인생의 지도는 이미 그려 있다고 생각해. 이런 일이 생기게끔 돼 있었던 거지."


  역방향이어서인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키는 보이지 않았다. 부리나케 집으로 올라가 탑박스 열쇠와 캔커피 두 개를 들고 내려왔다.


  "자, 지금부터는 아주 천천히 운전을 하면서 도로 위를 잘 살펴보자!"


  운전대를 잡은 후배와 함께 구석구석을 살피며 스쿠터를 몰고 달렸던 아라뱃길을 천천히 달렸다.


  "스마트키는 검정 가죽지갑에 들어있고, 거기 빨간색 탑박스 열쇠가 달려있어. 아마 빨간색이 눈에 잘 띄지 않을까? 아라뱃길에 과속방지턱이 몇 개 있는데 그곳을 지나다 진동으로 떨어졌을지도 몰라."

  "그럴 가능성이 있네요."


  그러나 과속방지턱을 다 지나도 키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라뱃길에서 김포공항 쪽으로 빠지기 위해 올라가는 언덕에서 떨어졌을지도 몰라." 그말을 막 마친 순간, 뭔가 눈에 번쩍했고, 동시에 후배가 속도를 뚝 떨어뜨리면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선배님, 봤지요?"

  "어, 봤어."


  후다닥 문을 여니, 차 오른쪽 도로 위에 키가 떨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며 차에서 내렸다. '신이시여,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고맙습니다.'


  (이 사건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온 후배가 차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외관상 멀쩡해 보였지만, 탑박스 열쇠에 차에 밟힌 것 같은 흔적이 있었다. 스마트키가 상했다면 시동이 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탑박스는 열 수 있으니, 시동이 안 걸릴 경우에는 가방만 꺼내서 후배 차로 방송국에 가면 된다.


  함께 개화산역으로 이동해서 일단 메밀국수로 배를 채우고, 스쿠터로 가 떨리는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계기반에 불이 들어오고, 시동키를 누르니 엔진이 가볍게 떨리면서 시동이 걸렸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쪽을 응시하고 있던 후배를 향해 회사로 돌아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후배가 차를 출발시키고, 나도 스쿠터에 올라 방송국을 향해 달렸다.


  '앞으로는 스마트키를 꼭 챙기자. 개목걸이라도 연결해 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