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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 인쇄 '눈 감아준' 조선인 형사 일화는 거짓

봄뫼 2019. 2. 16. 21:04

[정재환의 역사 팩트체크] 민족배신자 신승희 어떻게 민족지도자가 됐나



지난 글 '독립선언서 첫 인쇄본, 朝鮮(조선)인가 鮮朝(선조)인가'에서 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하고 있던 현장을 포착한 조선인 형사 신승희(신철)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하마터면 독립 선언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종일과 손병희는 거금 5000원으로 신승희의 입을 막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것이 널리 알려진 신승희와 선언서에 관한 일화다. 이 얘기를 다룬 글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를 읽어보자.


한창 인쇄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보성사 주변을 순찰하던 종로경찰서 소속 형사 신승희(申勝熙·일명 申哲)가 보성사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검문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종일로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쇄소 안으로 들어온 신승희는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독립선언서 인쇄가 바로 탄로가 나고 말았다. 이종일은 신승희 앞에 꿇어 엎드려 "당신도 조선 사람이니 제발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고 애걸했다. 그리고는 이종일은 잠시 다녀올 데가 있으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곧장 의암 손병희(孫秉熙)를 찾아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손병희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안방에서 5천원 뭉치를 꺼내주었다. 신승희는 이돈 5천원을 먹고 눈감아 주었다. 물론 이 돈은 천도교 자금이었지만 그날 밤 손병희가 당시로선 거금 5천원을 선뜻 내주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현재 조계사 자리에 있었던 보성사(普成社). 보성전문학교의 교과서를 찍던 곳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 사진은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됐다.


이 사건에서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뇌물 5,000원에 입을 꼭 다문 신승희가 얼마 후 자살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방송된 다음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그런 통설을 확인할 수 있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