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크게 바꾼 역사의 현장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3.1운동은 1918년부터 준비되고 있었지만, 불을 댕긴 것은 도쿄에 있던 조선인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이었고,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를 이끈 것도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시위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 선언서를 배포하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강이남에서 가장 먼저 만세소리가 터져 나온 군산의 3.1운동을 촉발한 것도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군산 영명학교 출신 김병수였다.
2월 25일 김병수는 민족대표 이갑성으로부터 군산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선언서 배달과 만세운동 전파의 중책을 맡은 김병수는 200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들고 자신의 모교가 있는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에는 1902년 1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전킨(Junckin, W. M., 한국명 전위렴)이 설립한 영명학교가 있었다. 교회는 선교와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웠지만, 조선인 학생들에게 영명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신학문과 문명을 만나는 창구였으며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가며 조선의 독립을 꿈꾸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