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화

코로나 덕분에 웃다

봄뫼 2020. 3. 27. 12:42

  온통 코로나 뉴스로 우울합니다. 개학이나 개강이 연기되어 학생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부모들은 24시간 아이들 보호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불편하고 힘들지만 개인위생, 사회적 거리두기 등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그마나 다행스럽습니다. 대구 경북을 돕기 위해 사람과 도시락, 마스크가 갔다는 소식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코로나 대응에 ‘한국이 모범적’이라는 외신의 보도를 접하니, 어깨가 조금 올라가면서 코로나 퇴치 때까지 좀 더 힘을 내야 한다는 용기도 솟습니다.



                          사진 출처: 김:여사 따라잡기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mctbiz&logNo=70173003506


  동양일보 2020년 3월 24일자에 '우울한 현실 반영된 코로나19 ‘웃픈’ 신조어는?'는 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웃픈'은 '웃다'의 사동사 '웃기다'와 형용사 '슬프다'의 합성어입니다.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오히려 울고 싶은 상황일 때 씁니다. 웃픈 현실, 웃픈 인생이라 쓰기도 하고 누리그물에는 '잠시 휴식 중'과 같은 웃픈 사진도  많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웃픈 신조어들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1번은 '확찐자'입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활동량이 급감해 ‘살이 확 찐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와 함께 ‘확찐자’의 이동경로까지 공개돼 웃음을 자아낸다. ‘확찐자’의 이동경로는 ‘식탁-쇼파-냉장고-쇼파-식탁-침대-냉장고-침대’다.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4555


  '확진자'와 '확찐자'는 철자는 달라도 발음은 같습니다. '확진자'를 발음할 때 경음화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발전(발쩐), 색기(색끼), 문고리(문꼬리)' 등과 같이 두 번째 음절의 첫소리가 첫 음절 끝소리의 영향을 받아 된소리가 되는 것이죠. 이런 우리말의 경음화 현상으로 인해 '확찐자'는 아주 쉽사리 태어났습니다.


「1」 『언어』 예사소리였던 것이 된소리로 바뀌는 현상. ‘등불’이 ‘[등뿔]’, ‘봄바람’이 ‘[봄빠람]’이 되는 것 따위이다.=된소리되기.
「2」 『언어』 예전에 예사소리였던 것이 된소리로 변하는 현상. ‘곶’이 ‘꽃’으로, ‘곳고리’가 ‘꾀꼬리’로 되는 것 따위이다.
- 표준국어대사전


  「2」는 경음화로 인해 철자마저 변한 것을 설명하고 있네요. 본디 ‘곶’이었지만 사람들이 되게 발음하다 보니 꽃이 된 것이지요. 오늘날 '꽃'이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곶'이라고 했다는 것을 용비어천가의 '곶 됴코 여름 하나니'(꽃 좋고 열매가 풍성하나니.)'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곶’이 꽃이 되고, ‘곳고리’가 ‘꾀꼬리’로 된 것처럼 '고추'가 '꼬추', '소주'가 ‘쏘주’, ‘주꾸미’가 ‘쭈꾸미’가 되는 대량 확산이 발생하기 전에 ‘고추’는 ‘고추’로, ‘소주’는 ‘소주’로, ‘주꾸미’는 ‘주꾸미’로 글자 그대로 순하게 발음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언행일치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왜 언문일치는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걸까요? 순하게 부드럽게 ‘소주 한 병 주세요.’가 왜 안 되는 걸까요?
  "‘확찐자’와 함께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신조어로는 ‘살이 많다’는 뜻의 ‘살천지’, 코로나19로 인해 살이 쪘다는 뜻의 ‘코로나비만’ 등이 있다."는 부연 설명을 읽다가 웃음을 참지 못해 박장대소와 포복절도를 번갈아 했더니, 아내로부터 '코로나 걸린 거 아니야'라는 웃픈 지청구를 들었습니다.
  2번은 '코로나블루'인데요, '코로나'에다가 '우울하다'는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 '블루(blue)'를 합한 겁니다. 중학교 때 '러브 이즈 블루(Love is blue,)'라는 노래를 들으며 '사랑은 왜 파랗지?' 했던 생각이 납니다. '코로나블루'는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기력, 불안의 감정을 가리키니, 사실 ‘웃프다’고 하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웃픈 신조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밖에도 피로나 두통 같은 일상적인 증상에도 코로나19를 의심하게 되는 ‘상상코로나’, 마스크 품귀현상을 꼬집는 ‘금스크’, 스포츠 경기를 집에서 관람한다는 뜻의 ‘집관’ 등도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압권은 '백신'입니다.


‘스님들이 코로나에 안걸리는 이유’라는 글이 화제다. 그 이유는 백신이 미리 보급돼서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스님들이 주로 싣는 흰 고무신(백신)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출처: 동양신문, 우울한 현실 반영된 코로나19 ‘웃픈’ 신조어는?


  산사에 있는 스님들이 백신(흰고무신)을 즐겨 신으셔서 감염된 분이 없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이지만, 사실 백신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당분간 예배나 집회를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부탁이나 이웃들의 간절한 애원, 심지어는 ‘신천지와 뭐가 다르냐?’는 날선 아우성도 귓등으로 듣고 예배를 강행하고 있는 일부 개신교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입니다. 예배를 해도 좋으니 모이지만 말자고, 당분간 온라인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들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한 그 분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기도 하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세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왜 모르는 걸까요?


20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