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화

‘썰은 김치’가 쉽고 편합니다!

봄뫼 2020. 4. 1. 07:04

  국어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제목이 이상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날으는 원더우먼’도 기억하시겠지요. 당연히 ‘날으는’이라고 생각했는데, 올바른 표기가 ‘나는’이라니, ‘아니 저 여자가 아니고 내가 원더우먼이야?’ 하고 반문했던 기억도 있을 겁니다. 비슷한 사례입니다만, '어떤 물체에 칼이나 톱을 대고 아래로 누르면서 날을 앞뒤로 움직여서 잘라 내거나 토막이 나게 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썰다'는 '썰어, 써니, 썰고, 썬'처럼 활용됩니다. ‘썰렁’은 있어도 ‘썰은’은 없습니다.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분들도 있고, 알면서도 전혀 신경 안 쓰는 분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우리말을 이상하게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2020년 3월 22일 뉴스1, '비비고 '썰은' 김치…맞춤법 무시한 제품명 이대로 괜찮나'에 소개된 CJ제일제당의 신제품 '썰은김치'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이 지난 20일 비비고 김치 신제품을 내놨습니다. 매운 김치에 익숙지 않은 어린이를 위한 맞춤형 제품으로 부모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것 같습니다. 이름은 '비비고 우리아이 한입 썰은 김치'입니다. 그런데 제품명이 좀 어색합니다. 그렇습니다. '썰은'은 틀린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몰라 국립국어원에 문의했습니다. 썰은은 틀린 표현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썰다의 활용과정에서 받침 'ㄹ'이 탈락해 썬이 맞고 썰은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자세하게 답변해줬습니다. 맞춤법에 따르면 썰은 김치가 아니라 '썬 김치'가 맞는 표현입니다.
https://www.news1.kr/articles/?3880612




  CJ제일제당에 규범에 어긋나는 ‘썰은’에 대해 문의했더니, "'썰은 김치'는 업계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라면서 고유명사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김치를 파는 풀무원·대상·동원도 모두 ‘썰은 김치’를 제품 이름에 쓰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김종윤 기자님이 기업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왜 '썬김치'가 아니고 '썰은김치'냐고 물었나본데, '썰은김치'가 기억하기도 부르기도 쉽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기사를 찬찬히 읽으면서 여느 기레기들과 달리 김 기자님이 매우 열정적이고 직업의식이 투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전화를 했고, 기업이 규범에 어긋나는 표기를 제품명에 쓰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문화부의 답변은 '기업 제품 이름은 고유명사인 데다 표현의 자유 때문에 무조건 바른 맞춤법을 적용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잘못된 표기를 제품 이름으로 쓰는 기업이나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문화부나 무책임하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듭니다.'
 
문득 약 20년 전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수험생을 혼란에 빠트린 제품이 있었는데요. 바로 롯데제과가 내놓은 인기 아이스크림 '설레임'입니다. 설레임은 설레다의 명사 설렘의 잘못입니다. 학창 시절 국어 맞춤법 문제로 설레임과 설렘 중에 고르는 문항을 풀었습니다. 설레임을 골라 틀렸던 친구도 꽤 많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설레임’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교육 현장을 지적하면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하면 이들의 태도가 아쉽다고 했습니다. 잠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만든 떡볶이를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어느 떡볶이 장수 아주머니의 말씀처럼 음식이든 뭐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업의 책무이자 기쁨이자 보람이자 행복일 것입니다.




  기업 활동의 목적은 이윤을 내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이지요. 좋은 제품을 만들면 돈이 생기는데, 이것으로 만사가 끝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부자가 된 기업들이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하는 등 선행을 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아름다운 선행을 실천하는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습니다. 그런데요, 김 기자님이 지적했듯이 '올바른 언어 사용도 대기업의 책무 중 하나'라고 주장하면 지나친 것일까요?
  1961년에 출시되어 곧 환갑을 맞는 음료가 있습니다. '피로회복에 박카스'로 유명한 박카스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셨나요? ‘회복’이라는 것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다.'는 뜻인데, '피로'를 회복하겠다고? 광고대로라면 박카스를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더 피로해질 겁니다. ‘내가 이러려고 박카스를 마시는 건가?’ 계속 피로해지려고 박카스를 꿀꺽꿀꺽 마시는 혼이 비정상인 소비자는 없을 겁니다.
   '피로회복'이 아니라 '원기회복'이라고 써야합니다. 그동안 국어 선생님들과 한글운동을 하는 운동가들과 언론인들과 우리말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바르게 써달라고 요청도 하고 부탁도 하고, 문안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는 박카스를 마시지 않겠다.’고 엄포도 놓았지만, 동아제약은 꿈쩍도 안했습니다. 박카스가 상했거나 비윤리적인 활동으로 비난을 받거나, 탈법으로 법의 심판을 받을 성질의 사안이 아닌 이상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겠죠?
  ‘횡단보도 정지 준수’, ‘쓰레기 투척 금지’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법으로 지도도 하고 처벌도 하지만, ‘꼰대’를 ‘꼰데’로 썼다고 1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10일 이하의 구류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나면 '민식이법'도 만들어지지만, 맞춤법을 무시하고, 파괴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올바른 국어사용 강제법’ 같은 것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올바른 맞춤법을 강제할 수 없다’는 문화부의 매가리 없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처벌이 없다고 해서 언어 규범을 업신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맛을 향한 열정
오뚜기 전 임직원들은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으로 인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업, 생산, 연구, 관리 등 모든 부서에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업무를 빈틈없이 처리하고 있는 것은 물론 밝고 명랑한 직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뚜기의 노력들이 바로 최고 품질, 최고의 맛으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 오뚜기 누리집에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우리말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걸까요? ‘밑을 무겁게 하여 아무렇게나 쓰러뜨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장난감 인형’의 올바른 표기는 ‘오뚜기’가 아니고 ‘오뚝이’입니다. 오뚜기식품 직원들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겠지요. 오뚝이는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요즘 같으면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도 ‘우리는 오뚝이처럼 일어설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누리그물에는 오뚜기와 오뚝이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뚜기로 검색하면, ‘오뚜기 팥칼국수 후기 / 신제품 오뚜기 철판뽀끼 / 오뚜기 XO 교자 만두 솔직후기 / 궁금해서 사봣다가 중독된 오뚜기 마라샹궈면 / 3.5톤 냉탑 오뚜기 정식차량 거주지~각 관내 소유자...’ 같은 글들이 쏟아지고 '비뇨기과 원장의 평생 오뚜기 남성이 되고 싶으면... / 몽클레어 카라비너 오뚜기 와펜 바람막이' 같은 글들도 나옵니다. ‘오뚜기 와펜 바람막이’는 바람 막는 옷인 것 같은데, ‘평생 오뚜기 남성’은 뭘까요? ‘오뚝이’로 검색하면, '[그래도 개막은 온다] '오뚝이' 원종현 올해도 "시련 극복~!" / [SQ인터뷰] 이호정 '피겨판 오뚝이'(下) 다시 뛰는 가슴' 같은 기사도 있고, 아이들 장난감 광고에 등장하는 이름은 하나 같이 ‘오뚝이’입니다.




  오뚜기와 ‘오뚝이’가 함께 쓰이고 있어 혼란스럽습니다. 신기한 것은 자장면과 짜장면에 대해 20년 가까이 옥신각신했던 사람들이 오뚝이와 오뚜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의견도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 일정한 기준이나 근거 없이 입맛에 따라 행동하는 언중의 이중성은 이성과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오뚝이와 오뚜기가 크게 충돌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어린이들은 맛있는 오뚜기와 귀여운 오뚝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을 멈추려면 ‘만날과 맨날 / 봉숭아와 봉선화 / 복숭아뼈와 복사뼈 / 자장면과 짜장면 / 날개와 나래’ 들처럼 오랜 동안 대립하던 말들을 모두 복수표준어로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뚜기를 표준어로 인정하면 오뚜기식품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지 모르지만, 장난감 오뚝이나 ‘오뚝이’를 고수해 온 기자들은 상처받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몇 사람 상처받는 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나도 표준어로 인정해 달라고 아우성칠지도 모를 ’썰은오뚜기파‘에 대한 대응도 쉽지 않고, 틀린 말과 표기를 ‘틀리다’고 과연 누가 직을 걸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언어 사용에 정오를 가리는 문제가 목숨 걸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천지자연의 조화, 종교와 사상, 도덕과 상식, 법률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인 것처럼 우리말글도 근대적 언어로서 체계와 품격을 지키는 지식과 상식, 질서와 규범, 사랑과 실천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할 것입니다.


20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