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띄어 쓰기
띄어쓰기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으면 그랬을까요? ‘그냥이렇게쭉붙여써도다알아볼수있지않아?’ ‘물론알아볼수있습니다.자리도많이차지하지않아좋네요.’ ‘그래골치아프게띄어쓰려고애쓰지말고그냥막붙여쓰자!’ 공감하시는 분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띄어쓰기를 완전히 포기하기 전에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경상일보 2020년 3월 29일자에 윤주은 교수님이 쓴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 띄어쓰기이다. 우리 문법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띄어쓰기를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하나는 원래 우리말은 띄어쓰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 언어 문법의 영향을 받아 현행 띄어쓰기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시기는 1930년대부터이다.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7452
띄어쓰기를 시작한 것은 1896년 4월 7일 창간된 독립신문이었습니다. 창간호 논설을 통해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거슨 샹하귀쳔이 다 보게 홈이라.”라고 하면서, 지식과 권력을 전유했던 지배 계층이 아닌 대중을 독자로 포용하면서 국민의 교양 향상과 국문 보급을 목표로 국문 전용, 띄어쓰기, 쉬운 조선어 쓰기를 단행했습니다. 민간에 보급된 것이 1930년대라는 것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을 만들면서 공식화되고 대중화된 시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을 한자로 적거나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다가 오로지 한글만으로 쓴 것은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신문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거였습니다. 한글전용 시대를 살다 보니 국한문으로 인쇄된 신문을 읽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1988년 한글신문 한겨레신문이 나온 후로도 거의 모든 신문이 국한문을 혼용하고 있었습니다. 신문 지식이라는 것이 한자로 표상되던 시대가 끈질지게 목숨을 이어왔습니다만, 한글의 편리함과 실용성,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밀려 국한문 혼용 신문은 자취를 감추면서 독립신문 백년의 꿈이 꽃을 피운 것이지요.
한글로 적힌 글을 읽는 것은 쉬운데 문제는 띄어쓰기입니다. 초등교육에서부터 띄어쓰기를 공부하니 어느 정도 규범에 맞게 쓰는 것은 중등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만 정확히 하는 것은 고등교육이 아니라 고등교육 할아버지나 박사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합니다. ‘주시경 선생님도 띄어쓰기 100점은 힘드실 걸!’이라고 하면 불경스러운 발언일까요?
만난지석달만에헤어졌다.
만난 지 석 달 만에 헤어졌다.
만난 지 석달 만에 헤어졌다.
만난 지 석달만에 헤어졌다.
만난지 석 달 만에 헤어졌다.
만난지 석 달만에 헤어졌다.
만난지 석달만에 헤어졌다.
불과 ‘석 달짜리’ 인연이지만, 이것을 띄어쓰기 규정에 맞게 정확히 띄어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띄어쓰기를 해결할 요술 방망이는 없다. 그래도 ‘한글 맞춤법’을 다시 챙겨 보면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제1절 조사. 우리말 단어는 띄어쓰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꽃이, 꽃이나마, 어디까지나’이다. 여기에 조사가 둘 이상 겹치거나, 조사가 어미 뒤에 붙는 경우도 붙여 쓴다. ‘집에서처럼, 나가면서까지도’이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쓰고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쓴다는 것이 우리말 띄어쓰기의 ‘기본 원칙이자 규칙입니다.’ 앞 문장에서 ‘원칙’과 ‘규칙’이 각각 단어이고 ‘이자’와 ‘입니다’는 조사여서 앞말에 붙여 씁니다. ‘이자’와 ‘입니다’가 조사인 줄 모른다면 ‘기본 원칙 이자 규칙 입니다.’라고 쓸 수도 있을 겁니다.
제2절 의존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및 열거하는 말을 규정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에서 ‘것’은 의존명사이기에 띄어 쓴다. 그리고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도 띄어 쓴다. ‘차 한 대’ ‘열 살’ ‘조기 한 손’이다.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려 쓰일 때는 붙여 쓸 수 있다. ‘두시 삼십분 오초, 삼학년, 2020년 3월 30일’이다. 그런데 수를 적을 적에는 만 단위로 띄어 쓴다. ‘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56만 7898’이다. 두말을 이어주거나 열거할 적에도 띄어 쓴다. ‘국장 겸 과장’ ‘청군 대 백군’ ‘책상 걸상 등이 있다’이다. 이 중에 ‘겸, 대, 등’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한다.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그때 그곳, 좀더 큰것’이다.
의존명사, 단위는 띄어 쓰지만 숫자와 어울릴 때는 ‘두시’처럼 붙여 쓸 수 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두 시’라고 띄어 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두 시’라고 써야 하지만, ‘두시’라고도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수를 적을 때는 ‘오십육만’처럼 만 단위로 띄어 쓴다는 것도 기억해야겠습니다. 두 말을 열거할 때, 다닥다닥 붙여서 ‘국장겸과장’이라고는 쓰지 않으시겠지요?
제3절 보조용언.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때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불이 꺼져 간다’, ‘불이 꺼져간다’이다. 앞이 원칙이고 뒤의 경우는 허용한다.
보조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꺼져간다’처럼 붙여 쓸 수도 있답니다. ‘책상 위에 인형을 세워 놓았다.’는 ‘책상 위에 인형을 세워놓았다’라고도 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갑자기 그녀가 그를 침대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는 ‘갑자기 그녀가 그를 침대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라고도 쓸 수 있습니다.
제4절 고유 명사 및 전문 용어. 성과 이름은 붙여 쓰고,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쓴다. ‘홍길동’ ‘성춘향 여사’이다. 전문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이다. 이 글도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는지 걱정이다
‘홍길동’은 성과 이름을 붙여 씁니다만, 성과 이름의 구분을 정확히 하기 위해 ‘남궁옥분’이라고 쓰지 않고 ‘남궁 옥분’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그냥 ‘남궁옥분’이라고 붙여 쓰면 성이 ‘남’ 씨이고 이름이 ‘궁옥분’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용어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처럼 띄어 쓰고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 붙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호칭어, 관직명은 ‘성춘향 여사’처럼 이름과 띄어 씁니다.
지금까지 윤주은 교수님이 귀띔해준 띄어쓰기 요령을 살펴봤습니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 조사는 붙여 쓴다. 보조 용언은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숫자와 어울릴 때는 붙여 쓸 수 있다. 보조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붙여 쓸 수 있다. 성과 이름은 붙여 쓴다. 전문용어는 붙여 쓸 수 있다. 호칭어와 관직명은 띄어 쓴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만난지석달만에헤어졌다’는 다음과 같이 쓰면 될 것 같습니다.
만난 지 석 달(석달) 만에 헤어졌다.
자, 이제 띄어쓰기에 대한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물음표이거나 수수께끼일지도 모릅니다. 국문학 전공자인 윤주은 교수님께서도 “이 글도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는지 걱정이다.”라고 몹시 걱정하신 것처럼 띄어쓰기가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석달만에’를 쓸 때 ‘석 달’과 ‘석달’이 모두 가능하고, ‘만’은 의존명사이니 띄어서 ‘석달 만’이 되고 ‘에’는 조사이니 앞말에 붙여서 ‘만에’라고 쓴다는 식으로 성분을 분석해 가면서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포기하는 것보다는 노력하는 것이 맞습니다. 띄어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 있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아주 편안한 규칙입니다. 그러니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노력해야지요.
그리고 문법적인 판단이 쉽지 않아 늘 헷갈리시더라도, 어려운 것은 어려워서 틀릴 수 있다 하더라도, ‘송창식 관장, 노사연 원장, 배철수 기사’처럼 ‘호칭어와 관직명은 띄어 쓴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나래 사장님’은 ‘박사장님’이라고 쓰지 않고 ‘박 사장님’이라고 씁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것은 그래서 실수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건 딱 한 번만 머릿속에 입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윤주은 교수님의 조언은 그야말로 요점이고요, 평생 한 번도 ‘한글맞춤법’을 공부한 적이 없으시다면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가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어 어문 규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http://kornorms.korean.go.kr/main/main.do
202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