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화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봄뫼 2020. 4. 14. 10:55

  202046일자 세계일보 기자가 만난 세상"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기사를 쓰다 보면 심심찮게 쉬운 우리말 쓰기 협조 요청메일을 받는다.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달라는 내용이다. 메일 하단에 문화체육관광부 발신이라는 표기는 자못 엄격·근엄·진지함을 더한다.

http://www.segye.com/newsView/20200406518745

 

   첫 단락만 읽고도 이 글을 쓴 기자가 쉬운 우리말 만들어 쓰기에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공직자들이 불철주야 바쁜 시기에도 기사를 하나하나 정독하며 귀신같이 외국어를 잡아내는 데에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말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은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여지없이 증명해 줍니다.

   김 기자는 경제기사에 '펀드''코스피', '사모펀드' 같은 단어를 쓰면 문광부가 펀드 대신 '기금', 코스피 대신 '거래소 시장', 사모펀드 대신 '소수투자자 기금'이라는 용어를 써달라고 주문을 하는데, 오히려 이게 뭐가 쉬운 말이고 뭐가 어려운 말인지 헷갈린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펀드자금을 뜻한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사실 사모펀드는 주식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언론을 통해 자주 들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뜻을 몰랐습니다. 저만 그랬을까요?

 

사모(私募)펀드는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로 고수익기업투자펀드라고도 한다. 영어표현으로 PEF는 사모펀드를 뜻하고 PE는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회사 자체를 지칭한다.

펀드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형성한 기금을 말한다. 사모는 공개적이나 대중적이 아닌 사적으로 기금을 모은다는 뜻으로서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일반 펀드와는 달리 사인(私人) 간 계약의 형태를 띤다.

사모펀드는 비공개로 투자자들을 모집하여 자산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에 자본참여를 하여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기업주식을 되파는 운용 전략을 취한다.

- 에듀윌시사상식: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01XXX1910003

 

   설명을 보니 사모는 한자로 私募이고, ‘공개적이나 대중적이 아닌 사적으로 기금을 모은다는 뜻이로군요. 영어로는 PEF(Private Equity Fund)인데, equity는 온갖 영어 낱말이 범람하는 일상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나 싶은 단어인데, 자산, 형평, 지분 등을 뜻하는군요. 이 정도 파악하고 보니 문광부에서 사용을 권했다는 '소수투자자 기금'이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는 한결 이해하기 쉽고 사모펀드를 대신할 말로 적절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김 기자는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사용자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모한다. 언어를 바꾸는 이유는 친목·유희·용어정의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언어 사용자의 편의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언어는 변하는 것이고, 언어는 사용자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언어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언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외국어나 외래어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편리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말들은 이미 외국어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는 편리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신 문맹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보다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쉬운 말을 써야 편의성도 올라갈 것입니다.

   김 기자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언어의 갈라파고스화를 낳는다고 합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말을 쓰다 보면 국제적인 왕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예로 전 세계 어디서나 커피를 마시는데 일본에서만 '고히'를 마신다며 일본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커피'가 통하지 않는 나라로 지목합니다. 김 기자의 지적처럼 일본인들은 코히(コーヒー라고 하지만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을 쓰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McDonald’마꾸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라고 하듯이 coffee를 음역한 결과 코히가 된 것입니다. 단어의 끝이 모음으로 끝나는 일본어의 특성에다가 다양한 받침소리를 표기할 수 없는 가나문자의 한계 때문입니다.

   이제 제목을 장식한 얼음보숭이로 가보지요. 김 기자는 "북녘의 땅에서도 소수의 지배층이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부르게 한다거나, 전구를 불알로 쓰게 했다."라고 썼습니다. 북한에서 얼음보숭이를 문화어로 권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쓰지 않아 사어가 된 말입니다. 1992년에 나온 ?조선말대사전?에도 얼음보숭이는 없고, 1981?현대조선말사전? 2판에도 없습니다.

   ‘전구를 불알이라고 한 것은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해 통일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되면서 북한알기운동이 전개되는 분위기에서 누군가 지어낸 우스갯소리였습니다. 전구는 불알’, 형광등은 긴불알’, 샹들리에는 떼불알이라는 말을 듣고 엄청 웃기도 했지만, 북한에서도 전구는 전구또는 전등알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도 확인하지 않고 기정사실처럼 기사를 쓰고 신문에 내는 용기에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게다가 다음 이야기도 전제가 잘못됐습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북한에 못지않게 순수 우리말 사용을 고집했던 시절, 각국의 이름을 우리말로 표기했던 적이 있었다. 프랑스를 불란서, 스페인을 서반아로 불렀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나라가 글로벌화를 겪으면서 사용자들은 음역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읽기 불편하고, 소통이 어려워서다.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말하고 쓰기 편한 프랑스, 스페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반면에 영국, 미국 같은 나라명은 음역어가 더 편리해서 사용자의 선택을 반영해 그대로 남았다.

 

   불란서(佛蘭西)와 서반아(西班牙)FranceSpain을 한자로 음역한 것일 뿐, 북한 못지않게 순수 우리말 사용을 고집해서 만든 말이 아닙니다. ‘글로벌화를 겪으면서 음역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면서 읽기 불편하고 소통이 어려워서라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고, 영국과 미국의 경우는 음역어가 편리해 사용자의 선택을 반영해 그대로 남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이럴 때 언어도단, 어불성설 같은 말을 썼는데, 오늘은 요즘 감각에 맞춰 이렇게 말해 보겠습니다. 말이야 방구야?


미국(美國)이란 말은 ‘America’에서 왔다. 중국에서 이를 음역해 亞美利加로 적고, 줄여서 美國이라 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米國으로 취음했는데 우리나라도 초기엔 두 말을 혼용해 쓰다 곧 美國으로 통일됐다. 영국이란 단어의 연원은 England. 중국어사전에는英格蘭으로 나온다. 중국에서 [잉거란] 정도로 취음한 말의 첫 글자 나라 을 붙여 한국 음으로 읽은 게 영국이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 '아라사''독일', 닮은 듯 다른 음역어

http://malgeul.net/gnuboard4/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163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도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기자를 입력하니 기자는 신문, 잡지, 방송 등의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나오고, “그 기사를 쓴 기자가 사건을 왜곡했다.”는 예문을 보니, 기자는 사건이나 사실을 왜곡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봅니다. 기자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현직 기자들 1만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대의 언론단체인 한국기자협회는 다음과 같은 기자윤리강령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언론이 위임받은 편집-편성권을 공유할 권리를 갖는다. 기자는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통해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국민들을 올바르게 계도할 책임과 함께, 평화통일·민족화합·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이와같이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이에 한국기자협회는 회원들이 지켜야 할 행동기준으로서 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제정하여 이의 준수와 실천을 선언한다.

 

2. 공정보도

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http://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4

 

20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