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의 우리말 비타민

개구장이인가 개구쟁이인가?

봄뫼 2020. 4. 22. 13:29

우리 같이 놀아요

뜀을 뛰며 공을 차며 놀아요

우리 같이 불러요

예쁜 노래 고운 노래 불러요

이마엔 땀방울 마음엔 꽃방울

나무에 오를래 하늘에 오를래 개구장이  

 

   1979년 발표된 산울림 동요집에 실린 개구장이입니다. 앨범 표지를 장식한 것은 과거 여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개구장이들이었고, 세상 한가운데 모여 손을 쭉 뻗으며 '공을 차고 나무에도 오르고 하늘에도 오르자'며 한껏 목청을 돋우는 모습입니다. 신기한 것은 당시 이 노래에 열광한 것은 10~20대의 청춘들이었습니다. 동요는 학교에서나 부르는 노래였는데, '아니 벌써'로 청춘의 귀를 매료시킨 산울림의 힘이었는지, '개구장이'는 소리가 닿는 세상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습니다.




   ‘개구장이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는 일각에서는 노래 제목 '개구장이'는 틀리고 '개구쟁이'가 맞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규범 표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이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비단 개구장이개구쟁이뿐만 아니라 우리말에는 쟁이장이가 붙는 말들이 꽤 많으니, 차이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2020420일자 한국경제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한복장이''한복쟁이' 구별하기에서 어떤 말에 쟁이가 붙고 어떤 말에 장이가 붙는지를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 별세.’ 이태 전 이즈음,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 무대에 알린 이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언론에선 부고를 전하면서 일제히 그를 세계적 한복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그는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한복 제작자이자 경영자이기도 했다. 이를 두루 나타내는 우리말은 한복장이이다. 타계하기 전 한국경제신문 칼럼을 쓰면서 그는 스스로를 한복장이라고 불렀다.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20041763281

 

   2년 전 작고하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은 스스로 '한복장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우리 시대의 진정한 한복쟁이'라고 추모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역시 쟁이장이가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장이를 쓰든 쟁이를 쓰든 큰 오해 없이 뜻은 통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규범 표기가 있고, 그렇게 쓰는 이유도 있습니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이 구별을 비교적 명쾌하게 정해놨다. 기술자에게는 ‘-장이’, 그 외에는 모음 역행동화 형태인 ‘-쟁이를 표준어로 삼았다. 이때 기술자란 수공업적인 기술자를 뜻한다. 따라서 한복장이를 비롯해 양복장이, 간판장이, 구두장이, 칠장이, 미장이, 대장장이, 땜장이라고 한다. ‘-장이는 어원적으로 ()+로 분석된다. 이 장인(匠人: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점을 알아두면 이해하기 쉽다.

그 외에는 모두 ‘-쟁이. ‘멋쟁이, 골목쟁이, 중매쟁이, 봉급쟁이, 안경쟁이, 겁쟁이, 난쟁이, 빚쟁이, 요술쟁이등이 그 예다. ‘점쟁이, 침쟁이, 환쟁이, 글쟁이, 광고쟁이, 신문쟁이등도 수공업적 기술자로 보지 않으므로 ‘-쟁이로 적는다는 것을 함께 알아두면 좋다.

 

   수공업에 종사하는 기술자에게 장이가 붙여 한복장이, 미장이, 칠장이, 땜장이라고 합니다만 장이가 주는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아 미장이보다 미장공, 칠장이보다 칠공이라 하고, 냄비에 난 구멍을 때우는 분들을 가리키던 땜장이라는 말보다는 수선공이나 용접공 같은 호칭을 더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이런 호칭들도 몹시 어색해졌고, 이런 분들과 직접 대화를 할 때는 아마도 '기사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쓸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면 쓰지도 않는 말들을 꼬치꼬치 따지며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어휘들을 말을 할 때만 쓰는 게 아니고, 글을 쓸 때, 가령 소설, , 수필 등 글을 쓸 때도 사용하니, 일상에서 자주 쓰지 않는다고 외면하거나 소홀히 할 일은 아닙니다.

   수공업에 종사하는 기술자가 아니고 어떤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멋쟁이, 빚쟁이, 난쟁이, 봉급쟁이, 겁쟁이, 고집쟁이, 떼쟁이, 무식쟁이라고 합니다. 오죽 무식하면 무식쟁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겠습니까만, 아편쟁이나 뽕쟁이, 오입쟁이 같은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을 의미하더라도 수공업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에는 점쟁이, 침쟁이, 환쟁이, 글쟁이, 관상쟁이, 이발쟁이, 광고쟁이, 신문쟁이, 방송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쟁이가 붙은 말 중 골목쟁이는 뭘까요? 골목대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골목에서 무리 지어 노는 아이들을 골목쟁이라고 하는 걸까요? 어렸을 때는 골목쟁이라는 말을 썼는데, 언제부턴가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보기가 힘들어 쓰지 않게 되면서, 어느덧 잊어버린 것일까요?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골목-쟁이

골목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간 좁은 곳.

경애는 잠자코 걷다가 어느 조잡한 골목쟁이로 돌더니 커다란 문을 쩍 벌려 놓은 요릿집으로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쏙 들어가 버린다.염상섭, 삼대

- 표준국어대사전

 

   ‘골목쟁이역시 골목쟁이가 만난 합성어입니다만, 골목쟁이의 '쟁이'는 앞서 설명한 심술쟁이, 환쟁이 등의 쟁이와는 성질이 다른 말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생김새가 비슷해 딸려 들어간 듯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쟁이는 어떤 속성을 가진 사람이나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이를 때 붙입니다. 어떤 일 중 수공업에 관련되면 장이를 붙입니다. 따라서 고 이영희 선생님은 '한복장이'라 하고, 짓궂게 장난이 심한 아이들은 개구쟁이라고 합니다.

 

속 성

직 업

직업 중 수공업 관련

멋쟁이, 고집쟁이, 심술쟁이, 중매쟁이, 봉급쟁이, 난쟁이, 안경쟁이, 겁쟁이, 빚쟁이, 욕심쟁이, 요술쟁이, 떼쟁이, 개구쟁이, 무식쟁이, 뽕쟁이, 아편쟁이, 오입쟁이...

점쟁이, 침쟁이, 환쟁이, 글쟁이, 풍각쟁이, 광고쟁이, 신문쟁이, 방송쟁이...

양복장이, 간판장이, 구두장이, 칠장이, 미장이, 대장장이, 땜장이, 한복장이...

 

202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