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는 벌리고, 일은 벌이고!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넘어왔습니다. 한 단계 수위가 낮아지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했지만, 책상도 띄엄띄엄 놓고, 밥 먹을 때도 거리를 벌려 앉는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친구들과 낄낄대며 나누는 점심 한 끼의 즐거움도 앗아간 듯합니다. 코로나는 거리를 벌리라고 명령합니다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가까이 해야겠습니다.
거리 두기와 관련해 ‘벌리다’와 ‘벌이다’를 혼동하는 일이 많다. “사물함 등을 복도로 빼내고 책상 간격을 최대한 벌여 놓은 상태다” “많은 학생이 모여 식사하는 식당 대신 교실에서 한 줄 앉기로 거리를 벌여 배식하도록 권고한다”처럼 쓰면 안 된다. ‘벌려 놓은 상태’ ‘거리를 벌려’로 고쳐야 바르다.
-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간격 벌리기
https://mnews.joins.com/article/23784447#home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랑이를 쩍 벌리고 앉으면 쩍벌남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는데, 최근에는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어 ‘쩍벌남’에 의한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책을 할 때도 앞사람과 거리를 벌리고, 극장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설 때도 앞뒤 간격을 벌려야 하지만, 옆 자리가 비어 있어도 가랑이를 벌리는 건 지양해야겠습니다.
벌리다 「동사」
둘 사이를 넓히거나 멀게 하다.
줄 간격을 벌리다.
예) 가랑이를 벌리다. /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다.
- 표준국어대사전
‘벌이다’는 큰 사업을 벌이거나, 시민운동을 벌이거나 노름판을 벌이거나 시위를 벌이거나 장미축제를 벌이는 등등 뭔가 일을 벌일 때 씁니다. 주위에 자꾸 일을 벌이는 친구가 있으면, 사는 게 지루하지 않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만, 고달플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한강시민동원에서 애견마라톤대회를 하는데, 탈진해서 쓰러질지도 모르는 참가견들을 돌볼 수의사가 필요한데, 너 좀 나와라!’
벌이다 「동사」
「1」 일을 계획하여 시작하거나 펼쳐 놓다.
예) 잔치를 벌이다. / 사업을 벌이다. / 여섯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지금은 여기 고향에서 청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었다.≪송기숙, 암태도≫
「2」 놀이판이나 노름판 따위를 차려 놓다.
예) 장기판을 벌이다. / 투전판을 벌이다.
- 표준국어대사전
평소에도 지켜야 할 공공예절이 많습니다만, 자가 격리를 무시하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거나,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거나, 본디 그래서 가는 것 같긴 하지만, 밀접 접촉을 피하기 어려운 클럽에 가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피시방을 가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사건 사고를 벌이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코로나가 재앙을 벌인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리무중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요. 생활 속 거리를 벌릴 때로 벌려서 하루빨리 일상의 소중함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