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을 칠 놈을 능지처참하라
사마천은 한 무제 때 사람입니다. 아버지 사마담은 30년을 사관으로 재직하다가 눈을 감으면서 자신이 쓰다 못 쓴 책을 완성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릉 사건이 터집니다.
기원전 100년 무제는 이릉에게 군사 5천을 주고 애첩의 오빠인 이광리를 도와 흉노족을 토벌할 것을 명했습니다만, 이광리는 전투에서 대패했고, 이릉은 흉노족 8만을 상대로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투항하고 말았습니다. 무제는 조정 대신들을 모아놓고 이릉에 대한 처분을 논의했습니다. 무제의 화를 눈치 챈 대신들은 침묵했지만, 사마천은 이릉을 비호했습니다.
이릉은 흉노족 토벌에서 패전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5천의 군사로 8만의 적군을 상대했고, 화살과 군량미가 제때 공급되지 않았음에도 분투했습니다. 살아남은 부하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그들의 목숨을 살리려 투항한 것뿐, 이는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함이 아니라 지금 목숨을 지켜 후에 기회를 얻어 흉노를 멸하고자 한 것입니다.
- 홍문숙ㆍ홍정숙 지음, ?중국사를 움직인 100인?, 청아출판사
그러나 사마천의 진언은 무제의 분노를 샀고,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형을 언도 받으면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요, 첫째는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으로 죽는 것, 둘째는 50만 전의 벌금을 내고 죄를 사면 받는 것, 마지막으로 궁형, 즉 거세를 하여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사마천은 치욕을 감수하고 궁형을 선택해 목숨을 보존했지만, 그의 정신과 육신은 피폐해졌습니다. 사마천은 불구의 몸을 자책했고 울분에 쌓여 흡사 미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마천은 자신이 왜 궁형을 선택하면서까지 살아남아야 했는지를 깨닫고 고통 속에서 집필을 계속해 중국 역사상 최고의 역사책 ‘사기’를 완성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달은 결과였습니다.
과거에는 형벌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효경’에는 다섯 가지 형이 등장합니다. 사마천이 받았던 궁형, 목을 베는 대벽, 발뒤꿈치를 베는 비형, 코를 베는 의형 그리고 경형입니다. 대벽은 사형선고와 다름없고, 그나마 비형이나 의형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잘 걷지 못하고 코가 없이 살아야 한다면 죽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사는 게 낫겠지요.
사극에 끔찍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증인을 심문하는 장면은 심문이라기보다는 고문이지요. 게다가 죄를 저질렀는지 어쨌는지 채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저놈을 능지처참하라’는 단골로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가지를 댕강 자르는 게 예사입니다. 지금도 사형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만, 과거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그런데 '능지처참'은 당장에 죽이라는 뜻일까요?
능지(陵遲)라는 형벌은 하루에 살점을 조금 씩 떼어내서 고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형벌이다. 조금 씩 살을 떼어내는 만큼 고통은 심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달(?) 정도 지나서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목을 끊어서 마무리하는 아주 잔인한 형벌이다. 처참(處斬)은 대역죄를 범한 죄인에게 과하던 극형으로 죄인을 죽인 뒤 머리, 몸, 팔, 다리를 잘라 토막을 내어 각지에 돌려 보이는 형벌이다.
- 프레시안,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경과 능지처참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0061208292844525
살점이 조금씩 떨어져나갈 때의 고통은 상상만 해도 아픕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죽을 때가 되면 목을 자른다는 것도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고 가혹합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교수형이나 전기의자가 한결 편할 것 같습니다. 여하간 '능지'는 천천히 살을 떼어내 죽이는 것이지 순식간에 목을 잘라 죽이는 형벌은 아닙니다. 그리고 죄인을 죽인 다음에 온몸을 토막 내어 각지로 보내는 것이 ‘처참’이니, ‘죄 지으면 이렇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이지요.
간혹 어르신들께서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경을 칠 놈'이란 말씀을 하십니다. 인사성 없는 젊은이,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 술 처먹고 골목길에서 고성방가를 하는 젊은이, 어른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우는 젊은이, 힘없는 어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젊은이 등등 모두 ‘경을 칠 놈’에 해당할 겁니다. 그런데 '목뼈'를 '경추'라고 해서 그런지 '경을 친다'는 말을 '목을 내려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묵형(墨刑 : 경형黥刑이라고도 하는데 이마에 먹물로 죄를 써 넣는 형벌)... ‘경을 친다’는 것은 ‘경형에 처한다.’는 의미로 죄인처럼 “이마나 팔뚝에 먹물로 죄를 새겨 넣는다.”는 뜻이니...
‘경을 친다.’는 말은 ’이마에 먹물로 글씨는 새기는 형벌을 주겠다.‘는 것이고, 글자를 새긴 채로는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려울 테니, 결국 사회에서 매장시키겠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이마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 술주정뱅이, 폭력범, 패륜아’라고 낙인을 찍지는 않을 테니, 그 정도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엄포나 욕, 협박 또는 악담인 셈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실제 이마에 글씨를 새기고 살 일은 없겠지만, '경을 칠 놈'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착하게 살아야겠습니다.
2020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