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와 간지
서울신문에 「똑똑 우리말」을 연재하는 오명숙 부장님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말 상식을 아주 친절하게 잘 짚어주시는 분이지요. 그동안 똑똑 우리말을 읽으면서도 나이는 전혀 가늠을 할 수 없었는데요, 2020년 7월 8일자 글, '나시' 아닌 '민소매'를 읽다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들을 예사로 썼던 기억이 있다. ‘다마네기(양파), 쓰메끼리(손톱깎이), 바께쓰(양동이)’. 요즘 아이들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일 것이다.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cp=seoul&id=20200709029010
정말 어렸을 때는 다마네기, 쓰메끼리 같은 말들을 아무 생각 없이 썼습니다. 수도 사정이 좋지 않아, 어머니 심부름으로 빠께스 들고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떠오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때는 버스 안에 쓰리꾼(소매치기)도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들입니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오 부장님께서는 단순히 ‘일본어에서 온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만, 모두 일제 잔재어입니다. 가라오케나 오타쿠 같은 말들과는 생겨난 시기도, 유입된 맥락도 다릅니다. 비교적 최근 들어 새로이 쓰는 말들은 그것이 일본어이든 영어든 우리가 주체적으로 수용해 쓰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일제 잔재어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우리말을 없애면서 강제로 주입한 말입니다. 일제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면 일제 잔재어도 청산해야겠지요.
이런 생각과 노력 덕분에 다마네기, 쓰메끼리, 빠께스 같은 말들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만, 여름만 되면 불볕더위와 함께 유령처럼 기승을 부리는 말이 있습니다.
나시는 본래 일본어 ‘소데나시’(そでなし)에서 온 말로 ‘소데’(そで)는 ‘소매’, ‘나시’(なし)는 ‘없음’을 뜻하는데 ‘소데’는 사라지고 ‘나시’만 남아 쓰이고 있다. 우리말 ‘민소매’와 같은 뜻이다.
우리말 민소매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나시’를 쓰거나 영어로 슬리브리스(sleeveless)를 써야할지도 모릅니다만, 근사한 우리말 ‘민소매’가 있으니, 더 이상 ‘나시’는 쓰지 말자는 겁니다. 나시뿐만 아니라 기지(천, 원단), 미싱(재봉틀) 같은 말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이 말들도 지금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반면에 여전히 쓰고 있지만, 이빠이(많이, 가득)이나 앗사리(산뜻하게)‘, 뿜빠이(분배) 같은 말들은 너무 유명해서 언급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한된 지면에 모든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이것만큼은 언급을 하고 싶습니다. ’간지 좋은데, 간지난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간지선글라스‘나 ’간지원피스‘도 많이 팔지요. 그런데 이 '간지'가 일제 잔재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かんじ(간지)
2 物事を見聞したり、人に接したりしたときに受ける気持ち。- 사물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 느끼는 기분. 印象や感想。- 인상이나 감상, 「感じのいい人」 - 간지가 좋은 사람. 「春らしい感じの日ざし」 - 봄 같은 느낌의 햇살.
4 その物事に特有の雰囲気。- 그 사물 특유의 분위기. 「母親役らしい感じが出る」 - 어머니 노릇 같은 느낌이 난다. 「ピッチングの感じをつかむ」 - 피칭의 느낌을 파악한다.
- デジタル大辞泉(小学館)- 디지털대사전(소학관)
일본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1-4번까지의 의미 중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쓰는 '간지'에 해당하는 것은 2와 4번이었습니다. ‘간지선글라스’나 ‘간지원피스’도 그만 팔아야겠습니다만, ‘노간지’는 정말 심각합니다. ‘느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노간지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분들이 붙여드린 애칭이었습니다만, '간지'가 일제 잔재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간지'가 일제잔재어라는 것을 알았다면 설마 '노간지'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겠지요?
2020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