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륀지냐 오렌지냐? 외래어 표기법이란?
1940년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조선어학회에 의해 외래어 표기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사정에 이은 3번째 언어 규범 제정이었습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서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설명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서, 국어에 널리 쓰이는 단어는 ‘외래어’로, 국어에 널리 쓰이지 않는 단어는 ‘외국어’로 구분한다.
- 우리말 톺아보기 '외래어 표기법'과 '외국어 전사법'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1710380003740
언제 설명을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말처럼'이라고 하면 우리말은 아니라는 뜻이 되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에 널리 쓰이는 단어'라고 하면 우리말이라는 건지 아닌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그냥 외국에서 왔는데,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을 한글로 체계적으로 적음으로써 우리말 사용자가 의사소통을 할 때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련된 방법을 말한다.
필자가 예를 들고 있습니다만, 커피숍으로 적을 것인지, 아니면 커피샾으로 적을 것인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슈퍼마켓을 '수퍼마켓'으로 적은 곳도 있습니다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슈퍼마켓'이라 적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외국어 전사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외국어 전사법’은 국제음성기호(IPA)나 특정 글자 따위로 외국어의 말소리를 옮겨 적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니까 '전사법'은 외국어의 말소리를 옮겨 적는 법인데, 최대한 원지음에 가깝게 적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한글처럼 표현력이 뛰어난 글자라 하더라도 외국어의 모든 발음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어 발음에는 강세, 장단, 억양도 의미 변별에 중요한 작용을 하므로 ‘오렌지’를 ‘어륀지’로 적는다고 해서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발음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언급한 '어륀지 소동'을 기억하시는지요? '오렌지'라고 하면 외국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니까, ‘어륀지’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이 이런 얘기를 했는데, 외래어로서 '오렌지'와 영어를 구사할 때 쓰는 '어륀지'를 구분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영어몰입교육을 해야 한다는 정책까지 나왔었는데, 이건 더 웃기는 사건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몰입교육을 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막상 추진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국어와 국사와 같은 과목을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도 없었습니다. 영어 수업조차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절대 부족하다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말에 없는 모든 외국어의 발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새 표기 방식을 도입한다면 온 국민이 익혀야 할 표기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므로, 교육, 인쇄, 출판 등의 분야에서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등 언어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원활한 국어 생활을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한글을 외국어의 발음 부호처럼 써서 외국어 발음을 충실히 옮겨 적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지적처럼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에서 들어온 말을 우리말 속에서 사용할 때, 일정한 표기를 사용함으로써 혼동을 일으키지 않고 국어생활의 편리를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컴퓨터, 콤퓨터, 콤퓨러, 컴퓨러 등을 모두 쓰면 얼마나 어지럽겠습니까?
2020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