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의 우리말 비타민

나라말인가, 나랏말인가?

봄뫼 2020. 9. 27. 20:10

  며칠 전 졸저 '나라말이 사라진 날'(생각정원, 2020.9.)을 출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시고, 고생 많았겠다며 격려도 해 주셨습니다. 살다 보니, 역사를 공부하고, 책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글을 쓰면서 힘들 때가 없지 않습니다만, 응원의 말씀을 들으면 고생했던 기억도 눈 녹듯 사라지고 보람도 느낍니다.

 

  많은 분들이 책 내용을 궁금해 하셨습니다만, 제목을 보고 '나랏말'이 아니고 '나라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그린 영화의 제목이 '나랏말싸미'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라말'보다는 '나랏말'을 익숙하게 생각합니다. '나랏말'이란 표기를 익숙하게 느끼는 이유는, 우선 이 낱말을 [나란말]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훈민정음 언해본'에 나오는 표기가 '나랏말싸ᄆᆞ'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면 '나라말'이 잘못된 표기일까요? 한글맞춤법 제30항 사이시옷 규정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2) 뒷말의 첫소리 , 앞에서 소리가 덧나는 것

멧나물

아랫니

텃마당

아랫마을

뒷머리

잇몸

깻묵

냇물

빗물

 

  ‘나물이 합쳐져 만들어진 나물은 멧나물입니다. 이유는 발음할 때 [멘나물]이라고 소리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라이 만날 때, 소리가 덧나면 '나랏말'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을 것도 같은데요, 보기에 '나랏말'은 없습니다. 물론 보기에 모든 낱말을 다 넣어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규범 표기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나라-

발음[나라말]

한 나라의 국민이 쓰는 말. =국어.

) 남의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말을 솜씨 있게 쓰는 것을 들으면, 신기할 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말이 새삼스럽게 정답게 들린다.염상섭, 백구

-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라말로 나오고 발음도 [나라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문으로 제시된 염상섭의 '백구'라는 소설의 한 대목에도 '나라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구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어학회가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만들어 사이시옷 규정을 마련하기 전에 쓰인 작품입니다.

  왜 '나랏말'이 아니고 '나라말'인지 명쾌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과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소리를 덧붙이지 않고 [나라말]이라고 발음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에 보이는 '나랏말싸ᄆᆞ'라는 표기가 여전히 혼란을 줍니다만, 규범 표기가 나라말이니 소리를 덧내지 않고 부드럽게 '나라말'로 발음하는 것이 맞습니다.

 

20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