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으로 치닫았다?
파국은 일이나 관계가 결딴이 나는 상황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쓸 때, ‘둘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았다/치달았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문제는 뒤에 오는 ‘치닫다’를 ‘치닫았다’라고 쓸 것인가, 아니면 ‘치달았다’라고 쓸 것인가 하는 겁니다.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파국으로 치닫은 ‘부자 전쟁’.”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한의 감정으로 치닫은 캐릭터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여닫다’가 ‘여닫은’과 ‘여닫을’로, ‘치받다’가 ‘치받은’과 ‘치받을’로 활용되는 것처럼 ‘치닫다’도 ‘치닫은’이나 ‘치닫을’로 쓰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데 이는 잘못된 쓰임이다.
‘치닫다’는 ‘힘차고 빠르게 나아가다’, ‘아래에서 위로 달려 올라가다’, ‘생각, 감정 따위가 치밀어 오르다’란 뜻의 동사다. ‘극단으로 치닫다’, ‘머리끝까지 치닫는 분노를 참았다’ 등처럼 쓰이거나 ‘정국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처럼 쓰인다. ‘여닫다’나 ‘치받다’와 다르게 ㄷ불규칙 활용을 하는 것이다.
- [똑똑 우리말] ‘치닫다’의 활용/오명숙 어문부장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cp=seoul&id=20210225029010
오 부장님의 친절한 설명처럼 ‘여닫다’와 ‘치받다’는 규칙활용을 하는 동사인데, ‘치닫다’는 불규칙활용을 하는 동사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 때문에 우리말을 정확히 쓰는 것이 어려운데요, ‘누가 이런 규칙을 만들었어?’하고 불만을 터뜨리실 수 있습니다만, 우리 선조들이 말을 불규칙하게 한 탓입니다. 다소 어렵더라도 규칙활용과 불규칙활용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맞게 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ㄷ불규칙 활용이란 어간 끝음절의 받침 ‘ㄷ’이 모음으로 된 어미 앞에서 ‘ㄹ’로 변하는 것을 뜻한다. ‘걷다’가 ‘걸어’, ‘걸으니’로, ‘듣다’가 ‘들어’, ‘들으니’로, ‘붇다’가 ‘불어’, ‘불으니’로, ‘겯다’가 ‘결어’, ‘결으니’로 변하는 것 따위를 말한다.
따라서 위 글에 들어 있는 ‘치닫은’과 ‘치닫을’은 ‘치달은’과 ‘치달을’로 바꿔 쓰는 게 옳다.
영숙이와 영철이 사이는 벌써부터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았다.
영숙이와 영철이 사이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2021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