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셔야 할까, 부숴야 할까?
얼마 전 광주에서 건물을 철거하다가 큰 사고가 났습니다.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등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마당에, 작은 건물 하나 제대로 부수지를 못해 그런 비극적인 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쪼록 더는 그런 알토당토 않은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언가를 두드리거나 깨뜨려 못 쓰게 만든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단단한 물체를 여러 조각이 나게 두드려 깨뜨리는 것을 뜻하는 ‘부수다’를 씁니다만, ‘부시다’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스마트폰을 부셔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와 설전을 벌이다 스마트폰을 부셔 버릴 뻔했다”
그런데 ‘부셔’는 ‘부시다’의 어간 ‘부시-’에 ‘-어’를 붙여 활용한 형태인데요, ‘부시다’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말입니다.
‘부시다’는 그릇 등을 씻어 깨끗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밥 먹은 그릇은 깨끗이 부셔 놓아라”가 이런 경우다. 또한 빛이나 색채가 강렬해 마주 보기가 어려운 상태에 있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실내에 있다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다”가 그런 예다.
- [우리말 바루기] ‘부셔야’하나? ‘부숴야’하나?
https://mnews.joins.com/article/24084334#home
따라서 ‘건물을 부셨다’고 하면 ‘건물을 그릇을 닦듯이 깨끗하게 씻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건물도 때때로 깨끗하게 청소는 해야겠지만, 그런 ‘부시다’가 아니고, ‘청소했다’고 하는 게 좋겠지요. 그런데 ‘부수다’와 관련해서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부수다’를 피동형으로 만들 때도 잘못 적기 쉽다. ‘부수어지다’, 즉 ‘부숴지다’가 돼야 할 것 같지만 바른 표현은 ‘부서지다’이다. 과거부터 어원적으로 이미 ‘부서지다’가 ‘부수다’에 대한 피동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 존재했고 지금도 그렇게 쓰이고 있으며, 또한 언중(言衆)이 실제 그렇게 발음하고 있는 것을 존중해 ‘부서지다’만 표준어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