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와 임차료
행궁동을 행리단길이라고도 합니다. 성곽 안쪽으로 예쁜 카페와 식당 등이 들어서고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면서 행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문제는 임대료입니다.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 때마다 건물을 빌리는 대가로 내는 조금씩 임대료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리는 대가로 내는 임대료’라는 말은 좀 이상합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임대/임차’도 단어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말 중 하나다. ‘임대(빌려줌)’와 ‘임차(빌려 씀)’는 명백히 다른 말인데도 이를 두루 ‘임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의 말인가’를 생각하고 써야 한다. ‘임대’는 주인의 용어이고, ‘임차’는 빌리는 사람을 주체로 한다. “인근 빌딩 1층 상가 유리창에 ‘임대인’을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런 데 쓰인 ‘임대인(빌려주는 사람)’은 생뚱맞다. ‘임차인(빌려 쓰는 사람)’을 잘못 쓴 것이다. 마찬가지로 ‘임대료’는 빌려준 대가로 받는 돈이고, ‘임차료’는 빌린 대가로 주는 돈이다. 그러니 “임대료를 체납했다”란 표현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임차료를 체납했다”라고 해야 한다. 동네 상가의 점포 유리창에 붙어 있는 ‘임대 문의’ 같은 안내문도 본말이 전도됐다. 임차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므로 ‘임차 문의’라고 해야 앞뒤가 맞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임대료'를 어찌 '체납'하나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1061183731
그동안 무심히 써온 말인데, 일반인들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잘못 쓰고 있었네요. 잘못 쓰는 말도 뜻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 오랫동안 그렇게 써 왔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정확해야 오해가 생긱지 않고 갈등도 생기지 않습니다. 홍 기자님의 글을 보니, 임대와 임차뿐만 아니라 위탁과 수탁도 그렇습니다.
“SK바이오, 미 노바백스 백신 ‘위탁생산’…전 세계에 공급” “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으로 돌파구 찾는다”
“르노삼성차는 2020년 닛산의 로그 ‘위탁생산’이 종료되면서 일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위탁/수탁’은 분명히 구별되는 말이다. 위탁은 남에게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다. 반대로 수탁은 남한테서 무언가를 맡는 것이다. 예문에서는 모두 ‘위탁생산’이라고 했으니 각각의 문장 주어가 남한테 생산을 맡겼다는 뜻이어야 정상적인 어법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니다. 실제로는 SK바이오가 노바백스의 백신 생산을 맡은 것이다. 인텔이 반도체 생산을 남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맡는다는 뜻이고, 르노삼성차가 닛산의 로그 생산을 맡았다는 얘기다. 그러니 모두 ‘위탁생산’이 아니라 ‘수탁생산’인 셈이다.
어쩌면 임대와 임차보다 더 헷갈리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만, 헷갈리는 말일수록 정확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홍 기자님은 단어의 변별성을 잘 살려 써야 논리적이고 합리적, 과학적 글쓰기가 이뤄진다고 합니다만, 단어가 가진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2021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