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마
겁내지 말라고 할 때, 흔희 '쫄지 마'라고 합니다. [쫄지 마]라고 발음하니, 쓸 때도 당연히 '쫄지 마'일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슛오프 때 ‘쫄지 말고 대충 쏴’ 했는데 운빨 좀 받았어요”〉
어느 신문에 실린 도쿄 올림픽 양궁 삼관왕 ‘안산’ 선수 인터뷰 기사 제목인데, 잘못이 2개 있다.
먼저, ‘쫄지 말고’는 ‘졸지 말고’라야 했다. ‘위협적이거나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다’라는 우리말 속어는 ‘쫄다’가 아니라 ‘졸다’이기 때문이다.
- [바른말 광] < 919 > 보름딸 뜬 산낄에서?
http://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81118285358495
'졸지 마'라고 하면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주의를 주는 말처럼 들립니다만, 겁내지 말라고 할 때, 쓸 때는 '졸지 마'라고 해야 합니다.
또 ‘운빨’은 ‘운발’의 잘못이었다. 이 말은 운수를 뜻하는 ‘운’에 기세 또는 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발’이 붙은 파생어이기 때문이다. ‘끗빨, 말빨’로 소리 나지만 ‘끗발, 말발’로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참고로,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효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도 ‘-빨’이 아니라 ‘-발’로 써야 한다. ‘조명빨 화장빨 약빨’이 아니라 ‘조명발 화장발 약발’이 옳은 것.)
말발이 좋다거나 화장발이라고 할 때, '발'도 말을 할 때는 [빨]로 소리가 납니다만, 이것 역시 '발'이라고 써야 합니다. 간혹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게 편하다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은데요, 이 기자님께서 그러면 우리말이 아주 우스워질 거라면서 애써 좋은 예문들을 만드셨네요.
‘식땅밥보다 집빱이 좋다./보름딸이 뜬 날엔 산낄 쪽 길까보다는 강까에서 술짠을 기울이는 게 운치 있다./그 녀석은 압따리를 꺼떡꺼리며 만화까게에서 만화를 보는가 했더니 어느새 길꺼리로 나왔다./봄빠람 앞의 등뿔 같은 존재.’
어떠신가요? 정말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게 편할까요? 위에서 보듯이 두 번째 음절 이후에서 된소리가 나는 것은 우리말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첫음절에서는 경음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자 그대로 발음하면 됩니다만,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된소리를 좋아하는지 첫음절도 글자와 달리 된소리를 내는 경향이 매우 짙습니다.
물고기 쏘가리는 본디 '쏘'여서 [쏘가리]라고 발음합니다만, '소머리'를 [쏘머리]라고 발음하지 않는 것처럼 '소주'를 [쏘주]라고 발음할 이유는 전혀 없고, '가짜'를 [까짜], '고추'를 [꼬추]라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야 술맛이 난다라든가, 강조하느라 그랬다든가’ 아니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렇게 따지냐’고도 반문할 겁니다.
저도 그런 기분이나 사정을 잘 압니다. 언어는 습관이어서 하루아침에 고치기도 쉽지 않고, 사실 고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해도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렇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국어를 바르게 적은 방법을 설명한 ‘한글 맞춤법’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2021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