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사용할 때, 동사와 형용사는 활용형을 주로 씁니다. 영어 동사 go는 1인칭과 2인칭 주어에서 go로 쓰고 3인칭일 경우 goes로 씁니다만, 한국어 동사 ‘가다’는 책 제목 같은 경우, ‘부산에 가다’처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가고, 가니, 가서, 가면’ 등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어 활용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어려워합니다. 마찬가지로 형용사 ‘작다’는 ‘작아, 작고, 작으니’ 등으로 씁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활용에 익숙하지만, 간혹 실수도 합니다. 아래 글에 등장한 ‘꺼리다’라는 동사도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백신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증인은 이름 밝히기를 꺼려해….’ ‘꺼려하는/꺼려해’의 뼈대인 ‘~어하다’는 동사를 만드는 낱말 구조로 형용사와만 어울린다. 기뻐하다, 반가워하다, 예뻐하다, 좋아하다 따위다. 한데 ‘꺼리다’는 동사여서 이런 구조가 성립하지 않는다. ‘꺼리는, 꺼려’ 하면 되니까.
- [양해원의 말글 탐험] [143] 장미와 작약이 다르듯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6/04/3BE5HKADJZFKTAALELMYSHYX7M/
따라서 ‘백신을 꺼려하는’은 ‘백신을 꺼리는’이라고 하면 되고, ‘이름 밝히기를 꺼려해’는 ‘이름 밝히기를 꺼려’로 충분합니다. 더러는 동사를 형용사를 착각해 잘못 활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동사를 형용사로 착각한 오류는 어미(語尾) 활용에서 흔하다. ‘충청도는 왜 웃긴가?’ 재치와 간결함으로 웃기는 충청도 말을 다룬 책이다. 문제는 ‘웃긴가'라는 표기. 동사는 형용사의 ‘ㄴ가’ 대신 ‘는가’를 의문형 어미로 쓴다. 제목 지은 의도야 어떻든, ‘웃기다’가 동사이므로 어법으로는 ‘웃기는가’가 옳다. ‘비는 왜 내리는가’ 해야 할 걸 ‘내린가’ 하면 말이 안 되듯이.
사실 ‘충청도는 왜 웃긴가’라는 제목을 보고, 바로 잘못 쓴 것을 알아챌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러고 보면 무심코 써서 틀리는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말을 사용할 때, 앞글에서 ‘-지 않다’와 ‘-지 않는다’의 차이를 확인했습니다만, 이렇게 연결형 어미를 쓸 때도 종종 헷갈립니다.
‘그가 뭐라 말한지 알 수 없었지만, 적대감은 없어 보였다.’ ‘ㄴ지(은지)’ 역시 형용사와만 결합한다. ‘조용한지, 넓은지, 힘든지’처럼. 동사에는 ‘는지’를 붙여 ‘말하는지, 말했는지’로 써야 한다. ‘비가 언제 온지/그친지 알 수 없지만’이 아니라 ‘오는지(왔는지)/그치는지(그쳤는지)’처럼.
‘말하다’가 동사이므로 ‘말한지’는 ‘말하는지, 말했는지’로, ‘온지’는 ‘오는지, 왔는지’, ‘그친지’는 ‘그치는지, 그쳤는지’로 해야 합니다. 구독자도 많지 않고 인기도 없는 정재환의 한글상식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끝날지, 끝나지 않을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2021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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