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투기지역을 전면 해제할 거라는 정부의 발표가 나왔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등 '버블 세븐' 지역을 포함한 수도권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가 요건을 갖추면 적극 해제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20일 ㄱ신문 기사에 따르면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정부 관계자는 "해제 요건을 충족시키는 곳을 대상으로 실사를 거쳐 11월 중 탄력적으로 해제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현재로선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를 전면적으로 해제하기 힘들다"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제도는 유지키로 했다"고 말했다.]
위 단락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이라는 말과 '총부채상환비율'이란 말 뒤에 괄호를 치고 다음처럼 적었다. (LTV)와 (DTI). 그러니까 '우선' 한글로 쓰고 영어 약자를 괄호에 넣었다. 괄호 속에 들어간 LTV와 DTI가 어떤 말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그 (LTV)와 (DTI)는 원래 영어에 그런 용어가 있다는 사실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게끔 설명해 줄 뿐 더 이상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LTV와 DTI가 원래 어떤 말인지 전혀 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괄호 속에 넣어도 그만이고 아예 표기를 하지 않아도 그만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정부는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LTV와 DTI규제가 완화돼 결과적으로 주택대출이 늘고 미분양 아파트 매입과 주택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현재 투기 지역의 6억 원 이상의 주택에 대해 DTI는 40%로 묶여 있지만,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자동적으로 60%로 상향 조정된다.]
불과 몇 줄 사이에 LTV와 DTI가 괄호( )를 걷어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 보면 위쪽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이라는 말과 '총부채상환비율'이란 말 뒤에 괄호를 치고 (LTV)와 (DTI)를 넣은 것은 뒤에서 괄호를 지우고 뛰쳐나오기 위한 예비동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도가 농후하다. 이런 식의 기사를 몇 번 작성하다 보면 어느 순간 '주택담보인정비율'이라는 말과 '총부채상환비율'이란 말은 종적을 감추고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LTV와 DTI가 당당히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IT와 BT 같은 말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과 같다.
글쓴이는 묻는다. 우리말과 한글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려는 것은 LTV와 DTI의 음모인가 아니면 그 기사를 작성한 ㄱ신문의 박00, 오00이란 두 기자의 의도인가? 만일 두 기자 탓이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식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인지, 우리말과 한글을 팽개치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아니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고 외치고 싶다.
어떤 경우에는 적당한 우리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외래 용어를 그대로 쓴다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최근 전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역시 애당초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라고 하면 될 것이었다. 외래 용어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남용하는 태도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LTV와 DTI를 괄호 밖으로 꺼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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