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를 붙이지 않으면 '부족하다'는 말이 되므로 물음표를 잊지 않고 붙였다. 며칠 전 전직 국무총리들께서 서명을 했단다,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정규과목으로 하자고!
한자를 알면 좋을 것이다.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가르치면 된다.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까지 강제로 한자를 가르칠 이유는 없다. 선택할 수 있으면 된다.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으면 된다. 애는 싫어하는데 부모가 원하면 가르칠 수도 있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잘 만난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간 초등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한자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
요즘 아이들은 한자가 아니어도 배울 게 너무 많다. 이것 저것 학습량을 자꾸 늘려서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학원에서 영어, 수학과 씨름하는 초등학생들이 많다. 10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간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게 정상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아래는 한글학회와 더불어 여러 단체가 낸 한자교육 반대 성명서이다. 한글문화연대도 참여했다.
〈성명서〉
‘한자’마저 초등학교 정규 교과로 밀어붙이려는
시대착오적 책동을 경계한다!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가 “초등학교 한자 교육을 정규화하라”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한글 전용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문화생활이 ‘위기’에 처해 있다.”라든가, “한자는 외국어가 아니라 국자(나라 글자)이므로 초등학교 정규 과목으로 넣어야 한다.”는 위 단체의 엉뚱한 주장을 담은 건의서에 역대 국무총리 중 20명의 서명까지 담았다.
오랫동안 대다수 국민을 문맹으로 만든 한자는 특권층의 반민주적 글자이다. 기득권층이 한자의 향수에 젖어 이 같은 건의서를 각계에 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대 국무총리의 권위’를 빌린 이 단체의 엉뚱한 주장이 그렇지 않아도 영어 공교육 강화로 신음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육을 다시 한 번 만신창이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다.
한글 전용은 수천 년 사대 모화의 쇠사슬을 단박에 끊고 자주적이고 민주주적인 겨레 문화를 이루게 한 쾌거였다. 한글 전용이 오늘날 우리의 문화생활을 ‘위기’에 빠뜨렸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한자 습득에 얽매여 청춘을 허비하던 시대에 비해, 한글 전용으로 문맹률이 세계 최소 수준으로 낮아져 우리 문화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음은 어린아이도 잘 아는 사실이다.
한글 전용으로 반문맹을 만들었다니, 한글은 아직도 그들에겐 언문이란 말인가. 서점에 나와 있는 대중 도서, 가령 소설 등 문예지와 학습서, 참고서 등의 99% 이상은 한글만으로 되어 있다. 한글이 글자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으므로, 한글만으로 된 책을 읽는 데에 불편을 느끼는 우리 국민은 거의 없다.
“한자는 외국어가 아닌 우리 글자”라는 주장은 그들이 한자-한문에 얼마나 심하게 중독되어 있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증거다. 왜 자라나는 세대를 또다시 사대 모화의 깊은 늪으로 몰아넣으려 하는가. 한자는 글자 그대로 한족의 글자며, 우리 역사를 사대 모화의 늪으로 빠지게 만든 망국의 글자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자를 쓰던 나라치고, 한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는 나라가 없다. 훌륭한 소리글자인 한글을 발명해 낸 우리나라는 한자를 완전히 버릴 수 있다.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가 현재 중학교부터 가르치고 있는 한문 과목을 초등학교 정규 과정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전직 국무총리들을 1년여 동안 찾아다니며 졸라서 서명을 받아 건의서를 냈다고 하니, 이는 단순히 한자-한문에의 향수로 볼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영어 교과 확대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볼 때에, 이 또한 막대한 이권을 염두에 둔 공작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건의를 크게 보도한 조선일보는 한자 검정 능력 시험의 교재를 출판하여 큰 이득을 보고 있다.
초등학교는 ‘국민 교육-보통 교육’ 기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 국민을 기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는 ‘국어’ 교육에 집중해야 하고, ‘한자-한문’ 교육이나 ‘중국어’ 교육은 지금처럼 중‧고등 학교 이상에서 실시하여, 전문화시켜 나가는 것이 옳다. 오히려 초등학교에서의 국어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일부 세력의 책동에 이끌려 보통 교육 기관인 초등학교 교육에 한자를 끌어들이는 잘못을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울러 겨레의 자주성을 지키고 디지털 시대의 말글 생활을 능동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국어 교육이 되도록 한층 더 힘써 주기를 바란다.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다시 가르치는 것은, 우리 역사를 백 년 전으로 되돌려 독립문을 헐고 영은문을 다시 세우며, 한글을 언문으로 되돌려 놓는 어리석음이다. 겨레의 앞날에 씻지 못할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9년 1월 13일
한글 학회 회장 김 승곤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회장 이 상보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회장 박 종국
외솔회 회장 최 기호
한글문화연대 대표 고 경희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문 제안
한글문화원 원장 송 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김 수업
세종대왕 생가터 복원 준비위원장 이 대로
한겨레 말글연구소 소장 최 인호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회 회장 이 봉원
한말글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끔빛 이 얄라
한글철학연구소 소장 김 영환
한글사랑 운동본부 회장 차 재경
짚신문학회 회장 오 동춘
한말글 연구회 회장 정 재도
국제크리스터디선교협의회 대표회장 김 희수
우리말로학문학기 회장 정 현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윤 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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