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절단식을 폐하라!

케이크 절단식을 폐하라!

봄뫼 2011. 4. 2. 23:47

  글을 시작하며

 

  그 날 나는 하객으로 앉아 있었다. 축의금만 전하고 그냥 갈까 했지만 혼주와 그럴 사이는 아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도 곁에 없었지만 앉아서 얌전히 자리에 앉아 예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사회자의 말이 들려왔다.

 

  “이제 곧 결혼식을 시작하겠으니 대화를 자제하시고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왠지 그 사회자의 말이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분이 좀 언짢았다. 사회자가 왜 저렇게 얘기하는 걸까? 결혼식 시작 전에 사회자가 하는 안내말은 “잠시 후에 결혼식을 시작하겠사오니 하객 여러분께서는 식장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정도다. 기껏 덧붙인다고 해봐야 “가능하면 앞자리부터 채워서 앉아 주십시오.” 정도다. 그런데 ‘대화를 자제하고 정숙해 달라’니? 누가 떠들기라도 했나? 설령 떠들었다고 해도 하객들에게 정색을 하고 주의를 줄 수는 없다.

  이윽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양가 모친의 화촉 점화가 있겠단다. 정확히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럼 이제 양가 모친의 화촉 점화가 있겠으니 화촉에 불이 붙을 때 하객 여러분은 큰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양가 모친의 화촉 점화가 있겠으니’도 마땅찮았지만 더욱 귀에 거슬린 것은 신랑과 신부의 입장을 알리는 말이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의 ‘입장이 있겠으니’ 하객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신랑 신부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또 그놈의 ‘입장이 있겠으니’로 시작하더니 ‘기립’해 달란다. 언제부터인가 신랑 신부가 행진할 때 기립 박수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사회자가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결혼식 시작하자마자 대뜸 일어나 달라는 거다. 신랑과 신부가 오늘의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만큼은 그 누구에게든 축하받아야 할 이들임에도 틀림이 없다. 개인적으로 봐도 내게는 존경하는 선배의 아들이고 그 신부이니 당연히 축하하고 싶다.

  문제는 사회자가 일어나라고 지시를 했다는 거다. 사회자가 일어나라니 반수 이상의 하객들이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흔쾌히 일어나고 싶었을까 아니면 일어나는 게 좀 귀찮았을까? 엉거주춤 일어나서 박수를 보내는 이들과 그대로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부조화 역시 불편한 광경이었다.

  사회자가 지시에 가까운 안내를 할 필요는 없다. 사회자에게 기립을 강요할 권한도 없지 않을까. 하객 중에는 신랑 신부의 친구도 있겠지만 삼촌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다. 그 모든 이들에게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기립을 강요하는 건 참으로 무례한 일이다.

  오래 전부터 사회자들이 하는 한심한 얘기를 참 많이 들었지만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얘기도 아니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얘기도 아니지만, 결혼식 사회자가 어떤 말을 하는 게 바람직한지 어떤 말을 함으로써 결혼식을 편안하고 즐겁게 이끌어갈 수 있는지 그 기초라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은 결혼식 사회자를 위한 것이다. 결혼식 사회를 보는 이들 중에는 글쓴이와 같은 전문 사회자도 있지만 대개는 신랑의 친구이거나 회사 동료라는 이유로 마이크를 잡게 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결혼식 사회라는 게 특별히 어렵고 힘든 것은 아니지만 결혼식과 진행에 대해 어느 정도는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이란 무엇인가? 일생에 단 한 번 치르는 성스러운 만남과 약속의 의식이다(더러 한두 번 더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러한 결혼식은 어떻게 행해져야 바람직한가? 결혼식을 주재하는 사회자는 누구인가? 결혼식을 잘 이끌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나?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우연찮게 결혼식 사회를 보게 되었을 때 과연 그 많은 청중들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론 식순에 적혀 있는 대로 읽으면 된다.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진행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고민은 필요하다. 안내 말씀은 어떻게 할지, 인사는 어떻게 할지, 식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어떤 말들을 어떤 태도와 기분으로 전달해야할지.

  이 글은 대학에 가는데 필요한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노벨상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다. 일반 독자들하고도 관계가 없을 수 있다. 그저 결혼식 사회자가 쓰는 말에 관한 글쓴이의 생각과 의견을 담았을 뿐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말이 바르고 아름답게 쓰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결혼식장에 가기까지

 

  결혼식장에 가기 전에 미리 목을 풀자. “지금부터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연습을 하자. “이로써 결혼식을 마치겠습니다.” 하고 비록 몇 마디 되지 않는 단순한 말일지라도 자꾸 반복해서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 신랑과 신부에게 할 축하의 말도 생각하고, 하객들에게 전할 감사의 말도 생각하자.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습니다. 많이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좌우지간 뭐든지 연습을 하자.

  사회자는 정장을 입는 게 좋다. 가능하면 밝은 색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게 좋다. 색깔 있는 셔츠도 좋고 나비넥타이도 좋다. 하지만 너무 화려하게는 입지 말자. 결혼식의 주인공은 사회자가 아닌 신랑이니까.

 

 

  결혼식순

 

  결혼식순은 결혼식의 순서를 정한 것이다. 법에 따라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략의 순서는 정해져 있다. 사회자는 누구보다도 그 순서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식순은 결혼식장에서 이미 준비해 놓은 것을 참고하면 되므로 크게 어려울 것은 없다. 식순은 결혼식을 하는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예식장이라면 대략 다음과 같다.

 

◇ 예식 안내(시작 5분 전쯤)

◇ 개식 선언

◇ 양가 모친 화촉 점화

◇ 신랑 입장

◇ 신부 입장

( - 신랑, 신부 동시 입장)

◇ 신랑, 신부 맞절

◇ 혼인 서약

◇ 성혼 선언문 낭독

◇ 주례사

◇ 축하 연주

◇ 신랑, 신부 내빈께 인사

◇ 신랑, 신부 행진

◇ 폐식

 

  결혼식 사회자는 적어도 예식 30분 전에는 식장에 도착하여 주례 및 축하 연주자 등을 미리 확인하고 위 순서를 숙지한다. 예식 10분 전부터는 식장의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며 예식 시작을 준비한다. 예식 시작 5분 전이 되면 첫 번째 안내 방송을 한다.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결혼식의 사회를 맡게 된 홍길동입니다. 잠시 후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하객 여러분께서는 식장 안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자리에 앉으실 때는 되도록 앞좌석부터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식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가지고 계신 휴대전화를 꺼주시거나 진동으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때 사회자는 정중하면서도 밝고 경쾌한 어조로 말하도록 노력하고, 결혼식이 인생 일대의 경사임을 명심하여 환한 미소를 잃지 않도록 한다. 예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식장 안을 정돈하는데 힘쓰고 약속된 시간이 되면 개식을 선언한다.

 

  “지금부터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이 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같은 말로 운을 떼도 좋고 “OOO 님의 장남 OOO 군과 OOO 님의 차녀 OOO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도 좋다.

  언젠가 방송 녹화에서 결혼식 사회자 역을 맡은 어느 선배가 ‘OOO 님의 장녀’를 ‘OOO 님의 창녀’로 발음해 녹화장을 뒤집어 놓은 적이 있었다. ‘장녀’가 ‘창녀’가 되는 순간 다들 박장대소하고 난리가 났다. 당연히 엔지가 나고 녹화가 중단되었다. 한참 동안 웃다가 간신히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녹화를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만일 방송 녹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면 신랑과 신부는 물론 가족과 친지, 하객 모두 아연실색, 기절초풍했을 것이고, 도저히 수습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사태를 감안해 철저하게 발음 연습을 해두자.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냥 간단히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은 ‘화촉 점화’다. 화촉 점화는 말 그대로 결혼식을 알리는 화촉에 불을 밝히는 의식이다.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등장해서 신랑의 어머니는 홍색 초에, 신부의 어머니는 청색 초에 불을 붙인다. 사회자는 양가 모친의 등장을 알리면서 박수를 유도한다. 법으로 정해진 말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만 되도록 간결하고 경쾌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특히 ‘화촉 점화가 있겠습니다’ 같은 표현을 피하고 ‘화촉에 점화를 하겠습니다’나 ‘화촉에 불을 밝히겠습니다’처럼 말하는 것이 좋다.

 

  “먼저 오늘 결혼식의 시작을 의미하는 화촉을 밝히겠습니다. (화촉 점화를 위해 양가 모친이 입장을 하실 텐데요, 하객 여러분) 양가 모친을 큰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화촉 점화가 끝나면 주례 선생님을 소개한다. 주례 선생님 소개는 그 이력을 되도록 간결하게 해서 소개가 장황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시고 미국에 유학하여 OO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귀국하여 국책 연구 기관인 OO연구원에서 5년 간 근무하셨으며, 국내 유수의 기업인 OO에서 10년 간 재직하고 이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힘써 오셨으며 현재는 대학원장을 맡고 계십니다.”와 같은 긴 설명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주례 선생님이 따로 요청을 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요즘 그런 분이 계실까?

 

  “그럼 이제 주례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주례는 신랑의(혹은 신부의) 은사이신 OO대학교 대학원장이신 OOO 교수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이제 신랑 입장이다. 신랑 입장 후에 신부가 입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요즘은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사회자는 결혼식의 주인공을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밝고 경쾌한 어조로 안내해야 한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가 차례로 입장하겠습니다. 먼저 신랑이 입장할 텐데요, 하객 여러분께서는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입장!”

 

  “이어서 신부가 입장하겠습니다. 역시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신부 입장!”

 

  만일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한다면 “오늘은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하겠습니다. 신랑 신부가 입장할 때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 입장!”이라고 하면 된다. 박수는 ‘큰 박수’도 좋고 ‘축하의 박수’도 좋고, ‘따듯한 박수’도 좋다.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는 동안에 “신랑은 정말 행운의 사나이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훈남입니다.” 같은 말로 주인공을 추켜세우며 분위기를 띄워도 크게 실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만나시겠습니다.” 같은 말도 좋을 것이다.

  언젠가 어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을 했는데 신랑의 친구인 듯한 사회자가 “신랑과 신부를 큰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미녀와 야수 입장!”이라고 해서 하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이처럼 적절한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면 결혼식은 더욱 즐겁게 진행될 것이다.

  “신랑이 걸음이 아주 빠르죠? 얼마나 결혼을 하고 싶었으면 저렇게 빨리 걸을까요?” 반면에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웨딩마치에 맞춰 입장을 하기 때문에 걸음이 느린 편이므로 “신부 아버지께서 딸을 보내기 싫으신지 걸음이 아주 느리시죠?”와 같은 말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신부가 시집을 가기 싫은가 봅니다.”는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농담이 아닌 실언이나 망언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웨딩드레스가 참 잘 어울리는데요, 저도 저런 드레스를 입으면 예쁠까요?”는 어떨까?

  박수를 받고 등장한 신랑과 신부는 주례를 마주보고 서게 되는데 하객 쪽에서 보면 신랑은 왼쪽, 신부가 오른쪽이다. 나란히 서면 곧바로 신랑 신부 맞절이다. 역시 “신랑 신부 맞절이 있겠습니다.”는 피하고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좋다. 사회자가 여기까지 하면 그 다음은 주례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다.

 

  “신랑 신부는 마주보고 서주시기 바랍니다. 신랑과 신부는 예를 다해 맞절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 맞절!”

 

  맞절을 할 때 주의할 것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 머리를 부딪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설 때 약간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은데, 이것은 사회자의 통제권 밖에 있는 일이다. 어쩌면 가볍게 머리를 부딪치는 것이 하객들에게는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맞절이 끝나면 혼인 서약이다. 순서를 알리는 것은 사회자의 몫이므로 “이제 혼인 서약을 하겠습니다.”하고 안내를 한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주례 선생님의 몫이다. 혼인 서약 시 묻는 질문은 대개 다음과 같다.

 

  < 혼 인 서 약 >

 

먼저 신랑에게 묻겠습니다. 신랑 OOO 군은 신부 OOO 양을 아내로 맞아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 : 네.)

신부에게 묻겠습니다. 신부 OOO 양은 신랑 OOO 군을 남편으로 맞아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신부 : 네.)

 

  물론 혼인 서약 시 하는 질문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 똑같지는 않다. 경험에 의하면 결혼식장에서 준비한 ‘서약서’를 읽게 되는데, 이 서약서를 그대로 활용할 경우 같은 식장에서 예식을 올린 신혼부부는 모두 똑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된다. 하지만 더러는 주례 선생님이 따로 질문을 준비해 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혼인 서약을 하겠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합니까?”

“신랑 : 네.”

“신부는 신랑을 사랑합니까?”

“신부 : 네.”

“신랑은 지금 이 순간부터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오직 한 사람 신부만을 사랑합니까?”

“신랑 : 네.”

“신부는 지금 이 순간부터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오직 신랑 한 사람만을 사랑합니까?”

“신부 : 네.”

“신랑,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신랑 : 없습니다.”

“신부,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신부 : 없습니다.”

“두 사람 다 오직 단 한 사람 지금 눈앞에 있는 이를 평생 배우자로 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혼인 서약문을 신랑 신부가 직접 써서 직접 읽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사전에 주례 선생님과 협의를 하고 사회자가 하객들에게 그 사연을 설명하고 소개하면 될 것이다. 혼인 서약이 끝나면 사회자는 “이제 주례 선생님께서 두 사람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성혼 선언을 하시겠습니다.”라고 안내한다. 성혼 선언문 낭독은 역시 주례 선생님 몫이다.

 

  “오늘 가족과 친지와 하객 여러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과 신부가 혼인을 서약했습니다. 이에 주례는 두 사람의 성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선언합니다. 20??년 OO월 OO일 주례 OOO.”

 

  성혼 선언이 끝나면 사회자는 주례사를 안내한다.

 

 

  “다음은 오늘 주례를 맡으신 OOO 선생님께서 신랑과 신부에게 금과옥조가 될 주례의 말씀을 들려주시겠습니다.”

 

  주례사는 신랑과 신부에게 주는 귀중한 말이다. 그것은 신랑과 신부의 인생의 지표가 되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하객들에게도 다시 한 번 결혼의 의미를 생각게 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게 해주는 귀중한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랑과 신부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참가한 모두가 경청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두 경청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면 좋다. 과유불급이라고 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회자의 통제 밖에 있으니 하늘에 맡길 수밖에.

  주례사가 끝나면 축하 연주를 소개한다. 축하 연주는 노래가 될 수도 있고 악기 연주가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주가 아닌 춤이 될 수도 있는데 내용에 맞게 소개를 하면 된다.

 

  “이번에는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순서입니다. 신랑의 학교 후배들이 중창을 준비했습니다. 연주곡은 ‘목련화’입니다. 큰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축하 연주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가 내빈께 인사를 한다. 최근 상황을 보면 양가 부모에게 먼저 인사하고 내빈께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회자는 “신랑과 신부가 내빈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라고만 하면 나머지는 주례 선생님이 이끌어 주신다. 주례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주도적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 경우에는 주례 선생님과 이심전심으로 호흡을 맞춰 가며 부드럽게 진행해야 한다.

 

  “내빈께 인사를 드리기에 앞서서 신랑 신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신부 부모님을 향해 인사하겠습니다. 오늘 이날이 있기까지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잘 살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겠습니다. 경례!”

 

  “다음은 신랑 부모님께 인사하겠습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효도하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겠습니다. 경례!”

 

  “이제 내빈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러 와주신 내빈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나 우선 이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신랑 신부 내빈들께 경례!”

 

  내빈께 인사가 끝나면 다음은 행진이다. 행진은 신랑 신부의 새 출발을 상징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행진하기에 앞서 신랑 신부가 지나야 할 관문이 생겼다. 소위 ‘이벤트’라는 것인데 결혼식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전통 혼례에서 신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때리는 것과 같은 풍습이 변형된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는 신랑에게 ‘팔굽혀펴기’나 ‘신부 안아 올리기’ 같은 걸 시키는데 신랑의 체력을 시험한다는 구실이 따른다. 신랑과 신부에게 ‘만세 삼창’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신랑에게 “옥경아, 사랑한다.”라고 외치게 하거나 신부에게 “오빠, 사랑해.”라고 외치게 하기도 한다. 하객들 앞에서 신랑 신부가 즐겁게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좋지만 결혼한 이상 더 이상 ‘오빠’가 아님은 분명하다. 뽀뽀를 시키는 경우도 아주 흔한데 요즘은 영화 장면 못지않게 뽀뽀가 아주 진하게 행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회자는 이런 걸 종합해서 1차, 2차, 3차 관문 통과까지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1차는 만세 삼창 + 뽀뽀인 경우가 많고, 2차는 체력 시험이다.

 

  “신랑은 가정의 기둥입니다. 가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지 한 번 보겠습니다. 팔굽혀펴기 10회 내려갈 때 옥경아, 올라올 때 사랑해! 시작.”

 

  있는 힘을 다해 팔굽혀펴기 10회를 끝내면 다음은 신부에게 주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자 이렇게 튼튼한 신랑을 얻었으니 신부는 ‘땡 잡았네!’를 3번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3차는 신부를 안고 식장을 짧게 돌게도 하지만 이런 이벤트가 너무 지나치면 즐거우면서도 경건해야할 결혼식의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는 신랑에게 구두를 벗게 들게 하더니 앞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라고 우선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면서 하객들 사이를 돌며 앵벌이를 시키는 사회자를 본 적도 있다. 하객들 중 몇 사람이 배추잎사귀 몇 장을 흔쾌히 쾌척하기도 했지만 애당초 구두를 들고 돌게 된 신랑이나 지갑을 열어야 하는 하객이나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런 식의 이벤트가 끝나면 드디어 신랑 신부의 행진이다. 행진 안내는 우렁찬 목소리로 힘차게 하는 게 좋다.

 

  “이제 신랑 신부가 희망차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행진해 나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두 사람을 축하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시오. 신랑 신부 출발!”

 

  식순에 의하면 ‘행진’이겠지만 행진보다는 ‘출발’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여하튼 신랑 신부가 행진을 하고 축포가 터지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이 때 하객들에게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달라고는 하지 말자.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일어날 사람은 일어날 것이요,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앉은 자리에서 축하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니 제발 ‘일어나 주십시오.’라는 말은 하지 말자. 행진이 끝나면 사회자는 폐식을 알린다.

 

  “이것으로써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자리 함께 해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잠시 후에는 기념촬영을 하겠으니 가족과 친지, 친구, 동료 분들께서는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피로연장은 OO입니다.”

 

  사진 촬영은 대개 주례 선생님과 먼저 찍고, 그 다음이 직계 가족이다. 그 다음은 일가친척이고 그 다음이 신랑 신부의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가족촬영 후에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 먼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순서를 바꾸는 건 어떨까? 친척들이라면 좀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에서 식사를 하는 곳도 많다. 하객들은 이동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2부 행사 비슷하게 신랑 신부가 다시 등장해 ‘케이크 썰기’ 등을 많이 한다. 케이크를 써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이 때 사회자의 말이다.

언젠가 어떤 사회자가 “지금부터 케이크 절단식을 하겠습니다.”란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 케이크 절단식이라니? 케이크를 절단하겠다니 도무지 가당치 않은 말로 들렸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겐 아무렇지도 안ㅎ게 들렸는지 이 ‘케이크 절단식’이라는 말이 아주 널리 쓰이고 있다. 결혼식뿐만 아니라 생일 파티, 개업식, 창립 기념식, 출범식 등등 온갖 행사에서 ‘케이크 절단식’을 하고 있다.

 

  배우 천정명이 29일 오후 서울 논현동 성암아트홀에서 열린 생일파티 겸 팬 미팅에서 팬들과 함께 생일케익(->생일 케이크)을 자르고 있다(이데일리SPN. 2009. 11. 29.).

 

  가수 김디지(김원종)이 결혼식에서 아내와 케익 절단식(->케이크 절단식)을 하고 있다(아츠뉴스. 2010. 5. 1.).

 

  시무식은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 완성을 위한 모두의 마음을 담아 ‘희망의 떡’ 케이크 절단식을 갖고 직원들이 직접 만든 2010년 순천시를 되돌아보는 영상을 감상하면서 올 한 해도 더 열심히 뛰자라는(->뛰자는) 새로운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됐다(내외일보. 2011. 1. 4.).

 

  당진교육지원청 양효진 교육장과 간부 및 직원 대표들이 3일 2011년도 시무식에서 당진교육의 힘찬 새 출발을 다짐하는 시루떡 절단식을 하고 있다(대전일보. 2011. 1. 4.).

 

  그렇지만 ‘케이크를 절단한다’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말인지 딱 한 번만 생각해 보자. 절단이란 말의 뜻은 자르거나 베어서 끊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로 다리가 절단되다, 전화선이 포격으로 절단되어 모든 연락이 끊겼다, 다친 다리를 절단하다, 전선을 절단하다, 아군은 작전상 선로를 절단했다.”(표준국어대사전)와 같이 쓴다. 누군가와 관계를 끊을 때도 절단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를 혼내주겠다는 뜻으로 ‘절단 내겠어’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너무 폭넓게 적용하지 않았나?

  ‘케이크를 절단한다’는 말을 맨 처음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말을 만들어 썼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언중의 둔감함에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말이 안 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공식 용어처럼 돼버렸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부터 케이크를 썰겠습니다.”라고 해도 되고 “지금부터 케이크 썰기를 하겠습니다.”라고 해도 된다. 물론 ‘케이크 커팅’이란 말도 많이 쓰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케이크 썰기’가 훨씬 낫다.

  그리고 이건 말 문제가 아니지만 몇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만일 케이크를 썰고 조촐하게라도 2부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면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말도 하고, 친구든 가족이든 나와서 축사도 했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축하한다는 인사도 하고 그렇게 말을 주고받고 정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는 것도 좋고, 친구가 나와 두 사람이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다면 그도 좋겠다. 2부 시간이니까 좀 더 편안하게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 좋지 않을까?

  여름에 참석했던 후배 결혼식은 주례 선생님이 없었다. 사회자가 모두 진행했고 혼인서약도 신랑 신부가 직접 했다. 성혼선언문 낭독은 신랑의 선배 한 사람이 나와서 낭독했다. 그 대신 여느 결혼식에서는 볼 수 없는 영상이 상영되었다. 신랑이 신부에게 청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에게 바치는 노래는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장면과 완성된 곡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신부가 감동했지만 하객들도 즐거워했다. 물론 그 후배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피디여서 그런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똑똑전화(스마트폰)로도 영화를 찍는 세상이다. 그 정도쯤 마음과 생각만 있으면 방송국의 피디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하면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 같은 틀에 박힌 결혼식 모습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