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앙코르와트 방문

봄뫼 2018. 2. 4. 12:21

  1월 30일 아침 6시 20분 출발 항공편을 이용해 3박5일 일정으로 아들과 함께 앙코르와트를 다녀왔다.


  19세기 중반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숨겨져 있던 앙코르와트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인 박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Albert Henry Mouhot)는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함과 우아한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그 어떤 유적보다도 위대하다."고 했다.


  12~13세기에 앙코르왕국은 두 왕의 강력한 통치로 번성했다. 태양의 수호자로 일컬어진 수리아바르만 2세는 지금의 타이 영토 정도로까지 세력을 떨쳤고, 2만 5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37년 동안 ‘도시의 사원’ 앙코르와트를 건설했다. 거대하고 웅장한 사원 앞에서 크메르인들의 건축 기술이 대단했다는 것을 느낀다.





  통치자의 명령에 따라 사원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힘든 노역으로 고통 받았을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희생자들의 규모가 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의 크기에 비례했을 거라 생각하면, 이처럼 큰 건축물을 만드는 것을 좋게만 볼 수 없다.

  사원 안에는 앙코르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글과 그림들이 기둥과 벽, 천장 등에 하나 가득 돋을새김되어 있다. 크메르문자를 읽을 수 없으므로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마치 거대한 도서관 안에서 역사책을 읽는 기분이다. 










 

  종이나 나무에 쓰거나 새기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서는 썩지도 않고 쉽게 깨지지 않는 돌이 가장 좋은 재료다. 돌로 사원을 짓고, 숱한 부조를 남긴 것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하려 했던 앙코르왕조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사원 곳곳에 서있는 사자상은 얼굴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고, 이민족의 침입에 의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다. 힘을 잃어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면 많은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된다. 사자상의 얼굴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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