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지역구 163에 비례대표 17석이니 여당 단독 180석입니다. 이에 대해 '과반수가 넘는 득표'를 했다고도 하고, '과반이 넘는 득표'를 했다고도 합니다. '과반수가 넘었다'고도 하고 '과반을 차지했다', '과반 이상 차지했다'고도 합니다. 어슷비슷한 표현이지만, 다 올바른 표현은 아닙니다.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마침 2020년 4월 15일자 서울신문 「똑똑 우리말」에서 '과반'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과반’(過半)의 뜻은 말 그대로 ‘절반이 넘음’이다. 단어 속에 ‘반을 넘다’란 의미가 들어 있다. “과반을 차지했다” 또는 “절반 넘게 차지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과반'이라는 말이 '반을 넘었다'는 뜻이므로 '과반'이라고 하면 이미 ‘반이 넘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했다'고 하면 ‘과’나 ‘이상’이나 둘 다 ‘넘은 것’을 뜻하기 때문에 ‘반이 넘은 상태를 넘었다‘는 좀 야릇한 말이 됩니다. 이건 ’동해바다‘라든가 ’고목나무‘, ’사기그릇‘ 같은 첩어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둘 중 하나만 써서 '과반을 차지했다'고 하든가, '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지 않습니다. 잘 알면서도 말을 하다보면 '과반수를 넘었다.'거나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하기 쉽습니다. 말은 툭 튀어나오는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신중하게 쓴 글에 이런 실수가 생기면 부끄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언어는 습관이어서 '반을 넘었다'거나 ‘과반이었다’, ‘과반수였다’, 과반을 차지했다(확보했다)‘라는 표현을 입에 붙이는 노력을 하는 게 좋습니다. ’노력보다는 그저 신경을 좀 쓰면 된다‘고 하는 게 부담이 덜 할까요?
‘-여’(餘)도 ‘넘다’나 ‘이상’과 함께 쓰면 부자연스럽다. ‘-여’는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그 이상’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부상자가 20여명 넘게 발생했다”고 하면 의미가 중복된다. “부상자가 20여명 발생했다”, “부상자가 20명 넘게 발생했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여'가 '그 이상'을 뜻하므로 '여'와 '넘게'를 함께 쓰는 것도 어색합니다. '백여 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아니 되고, '확진자 백여 명이 발생했다' 또는 '백 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해야 합니다. 물론 사소한 실수일 수 있고, '백 명 넘는'이라고 하든 '백여 명 넘는'이라고 하든 듣는 사람들이 똑똑한 덕분에 무슨 소리인지는 대개 압니다.
200명 가까이 되는 수를 나타낼 때는 ‘200여명’이 아닌 ‘200명가량’이나 ‘약 200명’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언어도 과학입니다. ‘아’인지 ‘어’인지를 정확히 표현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되도록 표현을 정확히 하는 것이 올바른 언어 사용법이고, 한국어는 부정확한 언어라는 손가락질도 피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래 전에 방송에서 어느 리포터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이 아기는 태어난 지 거의 3달여가 됐습니다.
'거의'는 3달이 아직 안 된 것이고, '여'는 3달이 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는 언제 태어났을까요?
2020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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