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을 만나면 여러 가지 직함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회사의 대표이며 동창회의 회장이며 지역자치위원회 위원장이며 무슨 포럼의 이사이며 정부 산하기관의 고문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살다보니 저도 좀 그렇습니다.
방송사회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한글학회 연구위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홍보대사,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홍보대사, 노작홍사용문학관홍보대사 등등
한 가지 일이라도 반듯하게 해야 할 텐데, 저도 모르게 인생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느끼셨겠지만, 글을 시작하면서 ‘이며’를 반복하니 단조롭기도 하고 지루합니다. ‘이며’ 대신 뭔가를 이어주거나 열거할 때 쓰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로 ‘겸, 내지, 대, 군, 및’같은 말들입니다. 그러면 ‘사장겸이사’라고 써야 할까요? ‘사장 겸 이사’라고 써야 할까요?
제45항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다음의 말들은 띄어 쓴다.
국장 겸 과장 / 열 내지 스물
청군 대 백군 / 이사장 및 이사들
책상, 걸상 등이 있다 / 사과, 배, 귤 등등
사과, 배 등속 / 부산, 광주 등지
45항의 규정에 따라 모두 띄어 쓰면 됩니다. 띄어쓰기 어렵다 어렵다 해도 이건 조금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① ‘겸(兼)’은 한 가지 일 밖에 또 다른 일을 아울러 함을 뜻하는 한자어로, ‘국장 겸 과장’과 같이 명사 사이에도 쓰이지만
아침 겸 점심
강당 겸 체육관
장관 겸 부총리
‘뽕도 따고 임도 볼 겸’처럼 관형어의 꾸밈을 받는 구조로도 사용되므로 의존 명사로 다루어지고 있다. ‘겸’은 관형사형 어미 ‘-(으)ㄹ’ 뒤에 쓰여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행위를 아울러 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구경도 할 겸 물건도 살 겸
의존 명사로 다루어진다니 잠시 뇌를 쓰게 되지만, 관형어의 꾸밈을 받는 자립성을 갖는 단어이므로 띄어 쓴다는 설명입니다. 결론적으로 ‘겸’은 항상 띄어 쓰면 됩니다.
② ‘내지(乃至)’는 수량을 나타내는 말 사이에 쓰일 때는 ‘얼마에서 얼마까지’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이다. 그 외에는 ‘또는’의 뜻으로도 쓰인다.
열 명 내지 스무 명
천 원 내지 이천 원
비가 올 확률은 50% 내지 60%이다.
산 내지 들에서만 자라는 식물
③ 아래와 같이 쓰이는 ‘대(對)’는 사물과 사물의 대비나 대립을 나타내는 말로 의존 명사이다.
한국 대 일본
남자 대 여자
5 대 3
한 가지 주의할 것은 ‘2020년 5월 참외 1개 3,000원’이라고 하듯이 ‘대’가 숫자와 어울릴 때 자주 붙는다고 해도 혼동해서 ‘1대1’이라 쓰면 안 됩니다.
반면 ‘같이 대를 이루다’나 ‘너희 둘은 좋은 대가 되는구나’와 같이 쓰이는 ‘대’는 자립 명사로 쓰인 것이다.
이 설명을 읽으면서 “‘대’가 무슨 말일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같이 대를 이루다.’ 사전을 찾아보니 무려 22개의 ‘대’가 나오는데, 그중 11번째 설명에 해당하는 낱말임을 알았습니다.
대11(隊) 「명사」
「1」 편성된 대열.=대오.
「2」 『군사』 소대, 중대, 대대 따위의 편제(編制) 부대.
「3」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편제된 무리를 세는 단위.
제일 대는 공격에 나서고 제이 대는 수비를 맡는다.
- 표준국어대사전
요즘에 ‘너희들이 대를 이루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너희들이 ‘한 편이 되면, 그룹이 되면, 무리를 이루면’ 등으로 말할 때 쓰는 낱말입니다. ‘대오를 이뤘다’고 하니 좀더 감이 옵니다. 그런데 우리말에 대략 22개의 ‘대’가 있듯이, 다음 ‘대’는 의미도 다르고 띄어쓰기도 달리 해야 합니다.
또한 ‘대-’가 고유 명사를 포함하는 대다수 명사 앞에 붙어서 ‘그것을 상대로 한’, ‘그것에 대항하는’의 뜻을 더할 경우에는 접두사로 쓰인 것이라 뒤에 오는 말에 붙여 쓴다.
대일(對日) 무역
대국민 담화
대중국 정책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의 품사가 접두사이기 때문입니다. ‘크다’는 뜻의 ‘대’ 역시 접두사여서 ‘대가족, 대기자, 대보름, 대패, 대박’이라고 씁니다. 그러나 ‘대머리’나 ‘대가리’의 ‘대’는 ‘머리가 크다’는 뜻의 ‘대’는 아닙니다. ‘대가리’는 ‘동물의 머리’를 뜻하고, ‘대가리’를 접미사로 뒤에 붙여 쓰면 ‘돌대가리’, ‘멋대가리’, ‘재미대가리’ 등처럼 비하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④ ‘및’은 ‘그리고, 그 밖에, 또’의 뜻으로 문장에서 같은 종류의 성분을 연결할 때 쓰는 부사이다.
원서 교부 및 접수
사과, 배 및 복숭아
‘ 및’의 띄어쓰기를 실수할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소변및대변’이라고 쓰거나 ‘경찰및검찰’이라고 쓰지는 않겠지요?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는 대원칙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이 밖에도 두 말을 이어 주는 말로서 둘 이상의 것 중 하나임을 나타내는 ‘또는, 혹은’과 같은 말이 있다.
수박 또는 참외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이제 마지막 5번입니다. ‘등’은 앞 의존명사 편에서도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등’을 앞말에 붙여 쓰는 경우가 잦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등’은 띄어 씁니다.
⑤ 사물을 열거할 때 쓰는 ‘등(等), 등등(等等), 등속(等屬), 등지(等地)’는 의존 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쓴다.
ㄱ, ㄷ, ㅂ 등은 파열음에 속한다.
과자, 과일, 식혜 등등 먹을 것이 많다.
충주, 청주, 대전 등지로 돌아다녔다.
여러 개를 열거하지 않고 하나만 제시한 뒤에 ‘등’을 쓸 때에도 앞말과 띄어 쓴다. 표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제시한 것 외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낸다.
지나친 흡연은 폐암 등을 일으킨다.
‘따위’도 앞말과 띄어 쓴다.
배추, 상추, 무 따위
너 따위가 감히…….
‘국어 전공자도 아닌 너 따위가 무슨 띄어쓰기를 설명하느냐?’고는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전공을 따지기 이전에 국어 사용자로서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피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전공 불문하고 국어는 기본이기 때문이지요.
2020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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