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의 우리말 비타민

낳다 낫다

봄뫼 2020. 5. 9. 23:22

  30년 전에 유행했던 난센스 퀴즈가 있습니다.

 

사과는 언제 따는 게 좋을까요?

 

   ‘가을에 딴다’, ‘익었을 때 딴다등은 너무 정직한 답변입니다. 정답은? 사실 정답이라기보다는 이 퀴즈가 요구하는 답이겠지요? 답은 주인이 없을 때입니다. 이번 건 난센스 퀴즈는 아닌데요, 아기는 언제 낳는 게 좋을까요? ‘건강할 때’, ‘낳고 싶을 때’, ‘젊었을 때’, ‘임신했을 때’, ‘배불렀을 때등등 많은 답이 가능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답은 결혼한 다음에일 겁니다.

   뚱딴지같은 소리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기를 낳다, 낳았다고 하지요. 그런데 아기를 낫다고 하거나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204월 설문조사에서 가장 헷갈리는 맞춤법 10위를 차지했는데요, 사실 낱말의 의미를 비교하면 전혀 혼동할 이유가 없습니다.

 

낳다배 속의 아이새끼알을 몸 밖으로 내놓음을 뜻한다.

반면 낫다병이나 상처 따위가 고쳐져 본래대로 됨을 의미한다.

- 이투데이, [우리말 한 토막] 낳다와 낫다 http://www.etoday.co.kr/news/view/1863875

 

   ‘배 속의 아이새끼알을 몸 밖으로 내놓다.’는 표현이 좀 어색합니다. ‘배 속의 아이새끼알을 출산함.’이라 해도 좀 묘하고... 역시 사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하간 아기를 낳다상처가 낫다를 의미상 헷갈리지는 않을 겁니다. 철자도 뚜렷이 달라서 잘못 쓸 가능성도 높지는 않습니다만, ‘낳다낫다를 활용해서 쓸 때, 기묘하게 발음이 같아지면서 실수를 유발합니다.

 

낳다는 발음이 [ː], 낳아[나아낳으니[나으니] 등으로 활용한다. ‘낫다[ː]로 소리 내며, 나아[나아나으니[나으니] 등으로 쓰인다. 이 두 단어의 활용 형태를 살펴보면, 우리가 헷갈리는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낳아’ ‘나아의 발음이 [나아], ‘낳으니’ ‘나으니의 발음이 [나으니]로 똑같다. 발음이 같다 보니, 쓸 때 두 단어의 받침을 혼동하는 것이다.

 

   낳다는 [ː], 낫다는 [ː]라고 발음합니다. 문제는 낳아낳으니(낳다) 그리고 나아나으니(낫다)의 발음이 [나아][나으니] 로 똑같다는 겁니다. 말을 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글을 쓸 때 을 헷갈려서 쌍둥이를 나았다또는 배탈이 낳았다고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용언의 활용 규칙을 알면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낳다는 규칙 동사이다. 따라서 어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여 낳아, 낳고, 낳지등으로 쓴다. 반면, ‘낫다불규칙 용언이다. 어간(-) 뒤에 오는 모음·자음에 따라 나아, 낫고, 낫지등과 같이 불규칙하게 변한다.

 

   ‘낳다가 활용을 해도 어간의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군요. 낳고, 낳으니, 낳아서, 낳았다, 낳았으니 등등. 반면 낫다의 활용형은 낫고, 낫지, 낫도록처럼 어간이 고정되기도 하지만, ‘나아, 나으니, 나았어, 나으리라등등 불규칙하게 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낫다는 불규칙 활용을 한다는 설명이 알쏭달쏭하게 느껴지시면 낳다의 어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어간 은 항상이라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친구가 애를 낳았어.

우리 집 개가 새끼를 7마리를 연달아 낳고는 기절했다 깨어나더군.

한 번에 쌍둥이를 낳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낳다는 생물학적 현상에만 쓰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결과를 이루거나 가져오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의 영향으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도록 하다.'는 뜻도 있어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증오는 전쟁을 낳고 전쟁은 비극을 낳는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또 다른 거짓말은 재앙을 낳는다.

자율주행자동차는 미래에 큰 이익을 낳게 것이다.

고려청자는 금속활자와 더불어 고려가 낳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20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