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가장 헷갈려하는 맞춤법 부동의 1위는 띄어쓰기입니다. 반면에 영어를 쓸 때, 띄어쓰기를 헷갈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영어에서도 newspaper(new+paper), sunrise(sun+rise)와 같은 복합어는 붙여 씁니다. anyone(any+one)은 역시 복합어입니다만 ‘any one’처럼 독립된 단어로 띄어쓰기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old-fashioned’ 같은 복합어는 낱말 사이에 ‘–’을 넣어야 해서 조금 헷갈릴 수 있지요. 이런 정도가 긴가민가하다고 할까요? 여하간 영어 공부하면서 띄어쓰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인들도 띄어쓰기 때문에 애를 먹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어에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東京都内で15日、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感染者9人が新たに確認されたことが関係者への取材でわかった。(동경도내에서 15일 신형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자 9인이 새로이 확인된 것이 관계자에 대한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朝日新聞デジタ
https://www.asahi.com/articles/ASN5H5H1GN5HUTIL037.html?iref=comtop_latestnews_01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지만, 지금도 한자를 섞어 쓰고 있어서 시각적으로 가나문자와 구분되고, 체언과 조사, 어미 등이 비교적 쉽게 파악됩니다. 설마 ‘야, 우리도 띄어쓰기 하지 말고 한자 쓰자!’고 하는 분들은 없겠지요? 한자 배우려면 엄청 고생해야 합니다. 여하간 한국어의 띄어쓰기는 왜 그렇게 까다로울까요? 사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해동에서육룡이태어나시고그행동을하신일마다모두하늘에서도와나타나는일이니옛성인들과같으시다어둡고넓은동쪽바다에서여섯용의하신일마다하늘이도우시고옛날성인들이하신일과같다.
- 용비어천가
정본부장은"이런저런걱정이되셔서받으신분도있고실제클럽이나주점을다녀오신분들도검사를받으신분들이있다"고설명했다.
- NEWSIS, https://news.v.daum.net/v/20200515152922254
이렇게 죽 붙여 쓰면 쓸 때는 아주 편안하고 좋습니다만, 읽을 때가 좀 불편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글맞춤법 띄어쓰기 규정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띄어쓰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글을 읽는 이가 의미를 바르고 빠르게 파악하게 하는 것이다.
- 한글맞춤법 제46항 해설.
그러니까 띄어쓰기는 글을 바르게 쓰기 위해 알아야 합니다만 정작 글쓴이가 아닌 독자를 위한 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 되었는데, 띄어쓰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좀 까다롭긴 하지만...
띄어쓰기를 주의 깊게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규칙 자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한두 가지 내용을 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어떤 말이 조사인지 접두사인지 관형사인지 의존명사인지 등등 구분이 쉽게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일단은 띄어쓰기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1장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국어에서 단어를 단위로 띄어쓰기를 하는 것은 단어가 독립적으로 쓰이는 말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일단 띄어쓰기의 기본은 단어와 단어를 띄는 겁니다. 그 이유가 ‘단어가 독립적으로 쓰이는 말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동생 밥 먹는다’에서 ‘동생’, ‘밥’, ‘먹는다’는 각각이 단어이므로 띄어쓰기의 단위가 되어 ‘동생 밥 먹는다’로 띄어 쓴다.
여기까지는 간단합니다. 전혀 어려울 게 없지요. 며느리도 알고 시아버지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다음부터 발생합니다.
그런데 단어 가운데 조사는 독립성이 없어서 다른 단어와는 달리 앞말에 붙여 쓴다. ‘동생이 밥을 먹는다’에서 ‘이’, ‘을’은 조사이므로 ‘동생이’, ‘밥을’과 같이 언제나 앞말에 붙여 쓴다.
‘이’, ‘을’ 같은 조사는 독립성이 없어서 단독으로 쓰이지 못하고 체언 뒤에 연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조사는 혼자서는 살지 못하고 다른 생물체에 기대 사는 기생생물과도 성질이 비슷합니다. 기생생물이 숙주에 딱 달라붙듯이 조사는 항상 앞말에 붙여 씁니다. ‘한글맞춤법 제5장 띄어쓰기 제1절 조사 제41항’에서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고 규정하고 있고, 다음과 같이 보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꽃이 | 꽃마저 | 꽃밖에 | 꽃에서부터 |
꽃으로만 | 꽃이나마 | 꽃이다 | 꽃입니다 |
꽃처럼 | 어디까지나 | 거기도 | 멀리는 |
웃고만 |
|
|
|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쓰고,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쓴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사를 거머리나 기생충,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성질을 가진 말이라고 하면 좀 지나치겠지요?
누나가 빵을 먹는다.
나는 떡도 좋다.
회사가 무지 크다.
사장님이 월급을 주지 않는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2020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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