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맞은’ ‘알맞은’

  인터넷에서 '초등학생 답안'으로 검색하면 재미있는 사진과 글을 잔뜩 나오는데요, 초등학생다운 순수함이랄까 기발함이 느껴지는 것들도 많고 너무 엉뚱해서 웃음을 참기 어려운 것들도 많습니다. 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오늘 주제에 ‘걸맞은 답안’ 서너 가지만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불행한 일이 거듭 겹침'이란 뜻의 사자성어는?

설( )가( )

 

  전혀 힌트가 없다면 금방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4자 중 2자나 열려 있어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뜻의 '설상가상'이 쉽사리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어느 초등학생의 답은 ‘설(사)가 (또)’였습니다. 까르르...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뉴턴이었나, 아인슈타인이었나, 아니면 코페르니쿠스였나? 워낙 유명하니 이 정도는 망설임도 없으시겠지만, 어느 초등학생의 답은 '죽었다'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알맞은 인사말은 무엇일까요?

옆집 아주머니께서 떡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당연히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가 시장에 가셨는데, 돌아오시면 아주머니가 갖다 주셨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같은 표현이 적절한 인사말이겠지요. 그런데 어느 초등학생의 답은 '안 사요.'였습니다. 하나만 더 볼까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여자의 신체적 변화를 한 가지만 써라.

 

  ‘키가 커진다, 나날이 예뻐진다’라고만 써도 좋았을 텐데, 어느 초등학생의 답은 '무섭고 난폭하며 폭력적이다.'였습니다. 초등학생다운 재치(?) 있는 답변입니다만, 사실 시험을 볼 때는 왠지 긴장이 되어서 걸맞은 또는 알맞은 답을 대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알맞은‘과 ’알맞는‘, ’걸맞은‘과 ’걸맞는‘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걸맞다’는 ‘두 편을 견주어 볼 때 서로 어울릴 만큼 비슷하다’란 뜻의 형용사다. 위의 원칙에 따라 형용사인 ‘걸맞다’에는 ‘-는’을 붙일 수 없음에도 ‘걸맞는’으로 쓰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분위기에 걸맞은 옷차림’, ‘그에게 걸맞은 배우자’ 등처럼 ‘걸맞은’으로 사용해야 한다.

서울신문 [똑똑 우리말] ‘걸맞은’이 ‘알맞은’ 표현이다/오명숙 어문부장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cp=seoul&id=20200611029009#csidx21e777454b69c8c9264f54fe58aa833

 

  ‘걸맞다’의 품사가 형용사이기 때문에 뒤에 오는 말을 꾸밀 때 ‘걸맞는 배우자’나 ‘걸맞는 옷차림’이라고 하면 아니 되고, 항상 ‘걸맞은’이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알맞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평소 헷갈릴 때가 많았는데, 해법이 의외로 간단합니다. 크게 고민할 것 없이 ‘형용사니까 무조건 알맞은, 걸맞은’이라고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배우자로서 알맞은 사람을 고르시오

남편을 볼 때마다 꽥꽥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내로서 걸맞은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글쓴이가 ‘약간 다른 형태’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만, 다음 정보 역시 ‘알맞은’과 ‘걸맞은’의 연장선에서 봐 두면 글을 쓸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 않다’도 품사에 따라 ‘-지 않느냐’와 ‘-지 않으냐’로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않다’ 앞에 오는 주 서술어(본용언)가 ‘두렵다, 슬프다, 아프다’와 같이 형용사이면 ‘두렵지 않으냐’, ‘슬프지 않으냐’, ‘아프지 않으냐’처럼 ‘-지 않으냐’로 써야 하고 주 서술어가 ‘먹다’와 같이 동사인 경우 “왜 먹지 않느냐”처럼 ‘지 않느냐’로 써야 한다.

 

  그러고 보면 ‘왜 따라오지 않느냐?’, ‘가지 않느냐?’, ‘부모 없이 산다니 좀 측은하지 않으냐?’, ‘사람이 꽃보다 예쁘지 않으냐?’처럼 일상에서 ‘으냐’와 ‘느냐’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적지 않은데요, ‘알맞다’가 형용사이므로 “항상 ‘알맞은’이라 쓴다.”고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에 오는 말이 형용사면 ‘은’을 연상해서 ‘으냐’라고 쓰면 되겠습니다.

 

‘알맞은’과 ‘걸맞은’은 더 이상 실수할 일이 없으니 기쁘지(형용사) 않으냐?

애인과 헤어져서 슬프지(형용사) 않으냐?

로또가 한 번도 맞지 않았는데 또 사러(동사) 가느냐?

어제부터 굶었는데 왜 먹지(동사) 않느냐?

 

2020년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