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죽겠는데, 뭘 그렇게 꾸물거리는 거야? 그렇죠. 바쁠 때는 좀 잽싸게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갑자기 옛날 우스갯소리가 생각납니다. 지네한테 심부름을 시켰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나가 봤더니,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더랍니다. 그 때까지 출발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장마가 끝난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하늘이 좀 꾸물거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꾸물거리다’를 쓰면, 구름이 껴서 하늘이 흐리다는 뜻이 아니고, 하늘이 동작이 느리다는 말이 되는데요, 하늘이 동작이 느리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얘기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이때는 ‘끄물거리다’를 써야 하는데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1년 강수량의 약 30%를 차지해 ‘제5의 계절’로도 불리는 장마철이면 많은 사람이 잘못 쓰는 말이 있다. “곧 비가 쏟아질 듯이 하늘이 잔뜩 꾸물거린다” 따위처럼 쓰는 ‘꾸물거리다’다. ‘꾸물거리다’는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이다”를 뜻하는 말이고, “날씨가 활짝 개지 아니하고 자꾸 흐려지다”를 이야기하려면 ‘그물거리다’나 ‘끄물거리다’로 써야 한다.
- 우리말 산책 하늘은 꾸물거리지 않는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190300085#c2b
‘꾸물’과 ‘끄물’의 차이가 이렇게 큽크군요. 내친 걸음에 사전도 좀 찾아보죠.
끄물-거리다
「1」 날씨가 활짝 개지 아니하고 자꾸 흐려지다. ‘그물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우리는 끄물거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발을 미루지 않았다.
날이 끄물거리더니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송기숙, 녹두 장군≫
「비슷한말」 끄물끄물하다, 끄물대다
「2」 불빛 따위가 밝게 비치지 아니하고 자꾸 침침해지다. ‘그물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불씨가 끄물거리며 꺼지려 하다.
끄물거리는 남폿불 아래에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입을 조금 연 채 모로 누워 있는 수영의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심훈, 영원의 미소≫
「비슷한말」 끄물끄물하다, 끄물대다
- 표준국어대사전
심훈의 ‘영원의 미소’를 읽지 못했는데, 예문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여하간 비가 올 듯 하늘이 흐린 것은 ‘그물거리다’거나 ‘끄물거리다’라고 해야 하는데요, 이 ‘끄물거리다’가 흐리다는 뜻의 일본어 ‘쿠모루(くもる)’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쿠모루쿠모루’가 ‘끄믈끄믈’이 됐다는 거지요.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설’입니다. 그보다는 위 엄민용 기자님의 글에 다양한 ‘장마의 이름’이 나와 있는데요,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1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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