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승강기 안에 광고판이 있다. 바삐 돌아가는 화면에는 단지 주민들에게 알리는 공지도 게시되지만, 대부분 광고다. 인근 마트의 할인 행사, 이런저런 상품 광고가 교대로 돌아간다. 승강기를 타는 시간이 잠시지만, 눈길이 간다. 광고 효과는 있을 듯.
정부나 지자체 광고도 자주 나오는데, 어제는 ‘The 경기패스’였다. 경기도민의 교통비 부담을 덜어주고,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카드인 것 같았다. 집에 들어와서 살펴보니, 취지도 좋고, 내용도 알차 보였다.
19세 이상 경기도민이 K-패스를 사용하면, 대중교통 이용 금액의 일부를 환급해 준다. 6~18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연 24만 원까지 환급해 준다. 지원 범위는 전국 모든 대중교통 버스, 지하철, 신분당선, 광역 버스, 지티엑스(GTX) 등이다.
지원 금액에 따라, ‘기본형’도 있고, ‘모두의 카드’도 있다. 기본형은 월 대중교통 이용 금액의 20~53%를 환급해 주고, 모두의 카드는 월 이용 금액 일정 한도 초과 시에 초과분을 모두 환급해 준다. 봄바람도 산들 부니, 한가롭게 버스 타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볼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대중교통 이용이 느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업은 경기도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고, 시작은 ‘K-패스’인 것 같다. 세종시민이라면, ‘이응패스’와 함께 K-패스를 쓰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K-패스의 K는 ‘대한민국(Korea)’의 K일 것이다. 실상 한류보다 K-컬처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K-팝, K-드라마, K-무비, K-푸드 등등 K는 한국을 상징한다. K-컬처를 거부하고 한류를 고집하면, 지나친 국수주의라고 비판받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어로 한글로 ‘한류’라고 하는데, 백안시당할 수 있는 현실도 모순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미 그런 풍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말에서 외래어나 K와 같은 외국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어느 정도 참고 살아야겠지만, 그래도 ‘The’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고 싶다. 컴퓨터, 인터넷, 온라인, 오프라인, 홈쇼핑 같은 외래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경기패스’의 ‘패스’도 그렇다. 이런 말들은 우리말로 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새롭게 들어온 도구나 기기의 이름이고, 일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명사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흡이 좋다’거나, ‘손발이 잘 맞는다’는 우리말을 뒤로 하고 ‘케미가 좋다’고 하는 것은 무슨 언어 감수성인가? 쉼터라는 말을 버려두고 노인들이 잘 모르는 ‘노인쉘터’를 설치하는 것도 어쭙잖다. 노인들에게 편안한 쉼과 안식을 제공하기는커녕 불편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우리말이 있는 것은 우리말을 쓰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The 경기패스’의 The는 우리말 ‘더’를 알파벳으로 표기했다. ‘더’를 ‘The’로 표기할 필요나 이유가 있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K와 달리 ‘The’에서는 어떤 상징도 배경도 맥락을 찾을 수 없다.
언어는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은 정서적인 안정을 줄 수도 있고,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할 수도 있다. 거꾸로 불안을 조성하거나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정한 말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 효과도 있다. 그런데 ‘The’를 써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있을까?
대통령은 공직자들에게 쉬운 말을 쓸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AI를 쓰기도 하지만, 인공지능도 자주 쓴다. 국어기본법에는 국어 발전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쉬운 우리말과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처벌 조항은 없지만, 국어기본법도 법이다.
‘The’는 국어기본법 위반이다. 만일 ‘The’를 쓴 곳이 경기도가 아니고, 모 기업이었다면, 시류를 탓하며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부인데, 지자체인데. 정부와 지자체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외국 글자를 남용하는 것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국어 발전은커녕 우리말에 해악만 끼칠 뿐이다. 애고,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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