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봄뫼 2009. 3. 29. 18:07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광고 문안이 화제인 것 같다. 언제부턴가 개고생이라는 말을 자주 쓰더니 급기야 텔레비전 광고에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고생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광고를 아주 잠깐 보기는 했지만 무얼 광고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그게 뭐든 중요하지 않다. 단지 ‘개고생’에 주목하고자 한다.

 

  개고생 이전에 나오는 ‘집나가면’은 ‘집 나가면’이라고 띄어 써야 한다. 개고생이 표준말이냐 아니냐? 광고에 저런 말을 써도 되느냐는 식의 의론이 분분한 것 같은데,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보니 명사,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감은 비속어에 가까운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다.

 

  문득 ‘개망신’이란 말이 생각난다. 개고생과 같은 구조다. ‘개 더하기 고생’, ‘개 더하기 망신’이다. 그렇다면 개망신은 어떤 말일까? 글쓴이의 경험에 따르면 개망신이라는 말은 방송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었다. 그건 즉 표준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비어나 속어이기 때문에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글쓴이는 방송 도중 개망신이라는 말을 쓰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끝내 써보지 못했다. 물론 일상에서는 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했다가 아주 개망신 당했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정말 X망신이다.

 

  개고생 덕분에 문득 개망신도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개망신은 어떤 지위를 가진 말일까? 그동안 생각했던 것처럼 비속어일까, 아니면 개고생과 마찬가지로 표준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보니 명사, “아주 큰 망신”이라고 되어 있고, 그 아래 비어, “개코망신”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명사이고 비표준어라는 의미이다. 역시 개망신은 쓸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개고생과 개망신이 생김새나 의미 구조가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왜 개고생은 써도 되고, 개망신은 쓰면 안 되는 것일까? 물론 방송언어의 근간은 표준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규정에 대해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고생과 개망신의 지위 혹은 신분의 구분을 어떤 기준을 갖고 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참고로 개가 앞에 붙는 말로 다음고 같은 것들이 있다.


  개꿈「명」특별한 내용도 없이 어수선하게 꾸는 꿈. 개나발「명」사리에 맞지 아니하는 헛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
  개살구「명」「1」개살구나무의 열매. 살구보다 맛이 시고 떫다. 「2」못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언짢은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개떡「명」「1」노깨, 나깨, 보릿겨 따위를 반죽하여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찐 떡. 「2」못생기거나 나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개차반「명」개가 먹는 차반인 똥이라는 뜻으로, 언행이 몹시 더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개판「명」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


 

  역시 '개'가 붙으면 대개는 좋지 않는 뜻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밖에도 개가 붙는 말이 많겠지만 ‘김구라’와 비슷한 ‘개구라’는 사전에 없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 걸 사족이라고 한다는 걸 잘 알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말을 좀 곱게 썼으면 하는 거다. 고리타분한 얘기 같지만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X고생하는 사람도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