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승강기를 탔다. 남자 대학생 두 명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XX 정말 그랬니?”
“그래 그 XX가 너 때문이라고 했다니까.”
“XXX, 그 XX 정말 죽여 버릴까?”
“그냥 놔두면 안 돼, 그 XX는.”
되도록 상상하지 말고 글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좁은 승강기 안을 욕설로 버무려버린 대화였다. 이 정도면 “길에서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었는데, 70% 이상이 욕설이었다.”는 지인의 말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욕설의 향연을 펼치는 일도 예사다.
“잘 지냈니, 이 X야?”
“이 X이 전화 걸자마자 욕부터 하고 XX이야. 아무튼 오랜만이다, 너야말로 잘 지냈니, 이 X아.”
악의는 없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는 어느 여고 동창생들의 대화이다. 악의는커녕 반가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욕설이 이렇게 다정다감한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정반대다. 남을 헐뜯고 원망하고 저주한다. 그래서 욕은 상처를 준다. 인격을 파괴한다. 남의 인격만이 아니라 내 인격도 파괴한다. 20년 친구가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기도 한다.
요즘 누리그물(인터넷)에서는 불특정 개인과의 욕설 배틀(경기)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심한 욕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하면 승리를 하게 되는 방식의 경기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욕설을 잘 퍼부어야 이길 수 있다. 상대방이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져 더 이상 한마디도 할 수 없도록 어마어마한 욕설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까? 좌우지간 욕설을 잘하면 이기고 욕설을 잘 못하면 진다.
김연아 선수는 하루 수십 번씩 엉덩방아를 찌어가며 연습을 한다고 한다. 욕설 시합에서 진 사람들도 그럴까? “X XXX 정말 XXX XXX XX 너무 XXXX 너무 XXX!” 빙판 위의 요정은 아름답지만 욕설계의 마왕은 추할 수밖에 없다. 애가 하도 욕을 해서 “욕하지 마, 이 XX야.”라고 아들을 야단쳤다는 아버지도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말은 인격이라는 말이 있다. 인격을 지키자고 하면 웃을지도 모른다. 고운 말을 쓰자고 하면 ‘픽’하고 또 웃을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한 얘기라며 하품을 할지도 모른다. 나도 안다. 이 정도를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알지만 욕설이 난무하는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그 뻔한 소리를 구시렁거리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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