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길을 가는 도중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중도’라는 말은 중앙도서관을 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교 안에 있는 ‘중앙도서관’에서 만나자는 뜻입니다. 이런 말은 학교 친구들 혹은 또래 사이에서나 통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나들이 오시는 어머님께 “어머니, 중도에서 만나요?”라고 하면 매우 어리둥절해 하실 겁니다. 이런 말들이 매우 많습니다. “고터에서 만날까 남터에서 만날까?” 이건 고속터미널에서 만날까, 남부터미널에서 만날까 하는 말입니다.
누리꾼들은 ‘강추, 강퇴’라는 말도 곧잘 씁니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강제 퇴장시킨다’는 뜻입니다. ‘깜놀’은 ‘깜짝 놀라다’이고, ‘흠좀무’는 ‘흠 좀 무서운데’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들에 대해 기발하다, 간편하다, 편리하다고 감탄하실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면 언어생활이 불편해집니다. 실제로 ‘이뭐병, 솔까말, 정줄놓, 병맛’ 같은 태생조차 알기 어려운 말들이 많습니다. 또래 집단 사이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통한다 하더라도 세대를 막론하고 두루 통할 수 없는 말이라면 곤란합니다. 줄임말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만들어 쓰기 전에 우리 모두가 알기 쉽고 쓰기 쉬운 말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 국악방송 우리말 우리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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