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간 6회 이어진 국어 정책 토론회 결산 좌담회]
토론회 참석자들 - 우리 말·글 관심 높인 계기
복수표준어 인정 확대 등 국민에 친근한 언어정책 필요
국어원장의 '어문정책 혁신안' - 표준국어대사전 개정 심의 정례화
3단계 걸쳐 위원회 조직·운영, 부호·표준화법도 개정 연내 발표
6월 23일부터 장장 12주간 6차에 걸쳐 열린 국어정책토론회는 여운도 짙었다.주최자인 국립국어원은 이런 연속 토론회는 개원 이후 처음이었다고 했다. 관심도 높았다. 한여름 장대비 속에도 경향 각지에서 '언중(言衆)'은 토론회장인 서울 목동 방송회관으로 찾아들었고, 조선닷컴 토론방 댓글은 총 250여건에 달했다. 캐나다 교민은 의견을 담은 책자를 보내오고, 각지에서 이메일과 전화가 쏟아졌다. 그 사이 국어원은 토론회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짜장면' 등 39개의 말을 표준어로 '승격(昇格)'하는 발표를 내놨다. 북한 방송은 종전의 중국인·지명 표기 원칙을 깨고 처음으로 '호금도'가 아닌 '후진타오'로 불러 국내 '한자음'론자들을 머쓱하게 하기도 했다.
- ▲ 지난 6월 23일부터 12주간 이어진 국어정책토론회가 15일 결산 좌담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좌담 후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선 참석자. 왼쪽부터 정재환 방송인, 박창원 국어학회 부회장, 권재일 국립국어원장, 손범규 SBS 아나운서, 박성렬 전 부산 대동고 교사.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대장정을 결산하기 위해 15일 본사에 권재일 국립국어원장, 박창원 국어학회 부회장(이화여대 국어국문학 교수), 사회자였던 손범규 SBS 아나운서, 토론자였던 정재환(방송인), 독자 박성렬(전 부산 대동고 교사) 등 5명이 모였다. 권 원장은 이 자리에서 향후 어문규범 운영과 관련한 혁신안도 내놨다. 그는 연내에 문장부호와 표준화법(호칭·지칭) 현실화 결과도 발표하겠다고 했다.
■권재일: 토론회 목적은 두 가지였다. 요즘 우리나라가 경제ㆍ스포츠 등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인식은 어느 때보다 낮다.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다. 또 언어 정책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한 자료로서 국민과 학계, 언론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박창원: 처음엔 학회가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다. 국어학회를 만드신 이숭녕 선생께서 "국어 정책이나 운동, 교육 같은 것은 국어 학술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학문 수준을 떨어뜨린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다행히 회원들 반대가 없었지만 전문 학자들 참여가 생각보다 낮아 아쉬웠다. 국어학도 정책과 닿아야 한다.
■정재환: 국어 문제도 한번에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느 분은 규정보다 사전을 잘 만들면 된다고 했지만 지금 사전에도 불만들이 많다. 뭘 없애고 뭐 하나에 의지하면 된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의견들이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박성렬: 한글 전용이냐 한자 혼용이냐의 주제가 이번에 빠진 게 아쉽다. 요즘 학생들은 한자 소양이 부족해 말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사이시옷 문제에서 보듯이 우리 어문규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문제다. 규정의 폭을 넓혀 언중이 쓰기 편하게 할 필요가 있다.
■박창원: 짜장면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했듯이 원칙과 현실(다수 언중의 사용)이 맞서면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면 된다. 언중이 '틀린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규범 운용을 '덜 틀리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손범규: 국어원이 이런 토론회를 월 1회 정도 상설화하면 어떨까. 모처럼 생긴 국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인·지명 표기 문제를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위해 언론과의 상시 협조 체제를 갖출 필요도 있다. 무슨 재난이 어디서 터졌는데 언론사들이 지명을 제각각 보도하고 나면 나중에는 바로잡기 어렵다.
■권재일: 이번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어문 규범 운영을 보다 신속하게 현실화하는 방안을 새로 마련키로 했다. 규범을 존중하되 실태 조사를 통해 나타난 '전봇대'(불필요한 비현실적 규제)를 뽑겠다. 맞춤법 자체를 고치려면 절차상 대응 속도가 떨어진다. 대신 표준국어대사전이 언어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함으로써 현실과 규범이 조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겠다. 구체적으로 표준국어대사전 개정을 위해 3단계에 걸쳐 위원회를 조직해 운영하겠다.
첫째, 사전의 단순 오류, 예를 들어 오표기된 한글이나 한자, 잘못된 연도 표시 등은 자체 사전운영위에서 확인되는 대로 곧바로 수정하겠다. 둘째, 뜻풀이와 용례의 변화는 국어원과 학계 인사들로 별도 위원회를 조직해 3개월에 한 번씩 심의회를 갖고 결과를 사전에 반영하겠다. 셋째, 표준어 선정과 직결되는 표제어의 경우 연 1회 언어사용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후보자를 선정하여 국어심의회를 거쳐 결과를 신속하게 반영하겠다. 이와 관련된 어문규범영향평가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또 연내에 문장부호와 표준화법 부분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현재 낫표(「」)와 겹낫표(『』), 겹꺾쇠표(≪≫) 같은 부호가 규정과 다르게 활용되고 있다. 또 1992년 조선일보와 표준화법(호칭ㆍ지칭)을 만든 이후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가령 '엄마'는 통상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고 어른은 못 쓰게 돼 있는데, 요즘은 여성 어른도 흔히 엄마라고 한다. 신랑이란 용어도 원래 막 결혼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요즘은 결혼한 지 오래된 중년 여성도 자기 남편을 신랑이라 부른다. 결론적으로 말해, 앞으로는 언어 현실 변화에 보다 역동적으로 대처하겠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15/20110915027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