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12) 한글 운동은 계속된다!

봄뫼 2012. 11. 30. 14:11

 

지난 117일 수요일. 글쓴이에게는 정말로 감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22년 만에 한글날이 공휴일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내년부터 109일 한글날이 공휴일로 다시 지정될 전망이다.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 22년 만이다. 행정안전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8일 입법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개정령안은 다음 달 18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시행된다(연합뉴스, 2012. 11. 7. 내년부터 한글날 쉰다22년만에 공휴일 재지정).”

 

낭보였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 되면 올해의 10대 뉴스같은 걸 뽑는다. 올해는 흉흉한 사건이 많았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도 있었고, 대구 학교 폭력 사건, 유아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사건에 노크 귀순 사건도 있었다. 일본과는 외교 갈등이 심각했다. 어떤 뉴스가 10대 뉴스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범야권의 후보 단일화 소식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고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든, 두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했지만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는 소식이든 10대 뉴스에 꼭 들어갈 것이다. 만에 하나, 후보 단일화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 또한 10대 뉴스에 들어가지 않을까? 만일 글쓴이가 뽑는다면 1위는 단연 한글날 공휴일 소식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한글날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다시는 한글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더욱 기쁘고 반가운 것은, 독자들께서도 똑똑히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글쓴이가 지난 호에서 빨간 날이 아니면 잊힌다는 얘기를 하기가 무섭게 이 뉴스가 나왔다는 점이다. 사실 그 동안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드는 데 대해 행안부는 좀 미온적이었다. 일하는 날이 하루 더 느는 것을 싫어하는 경제계의 눈치를 본다는 얘기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한글날 공휴일 보도를 접하고 보니, 행안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민족21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았다. 한글의 의미와 가치를 그들 또한 잘 알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리고 글쓴이 못지않게, 일반 국민 못지않게 한글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안부, 고마워요!

 

그렇다고 해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그 동안 글쓴이가 여기저기 써대고, 이곳저곳에서 떠들어댄 덕분이라는 둥 생색은 내지 않겠다. 사람은 누구나 과시이 있다. 뭔가 있으면 생색을 내려고 한다. 글쓴이도 과거에는 생색 좀 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니 낸 것만 못한 적이 많았다. “뭐 했다고 생색이야 생색이?” 하는 얘기 들으면 김 팍 샌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살기로 했다. 이런 게 다 삶의 지혜다. ‘세상이 다 몰라도 하늘이 안다.’ 이런 말도 필요 없다. 그냥 묵묵히 사는 거다.

 

한글날이 공휴일이 됐으니, 앞으로는 또 무슨 운동을 하나?’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었다고 해서 한글 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년부터 맞게 될 공휴일 한글날을 어떻게 의미 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글쓴이 혼자 생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므로 시민들의 의견을 잘 듣고 한글 운동 동지들과도 잘 의논해야 한다.

 

여러분, 좋은 의견 있으면 좀 주세요!’

 

또 하나 당장 풀어야 할 문제는 광화문이다, 현판을 한글로 써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문화재 복원의 원칙에 입각해서 한자로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원칙 얘기를 앞세우면 참 입장이 난처하다. “원칙을 중시한다는 사람이 왜 광화문 현판에 대해서는 예외를 말합니까?”라고 추궁을 당하면 답이 궁색하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광화문만큼은 새 역사를 쓰는 마음으로 한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때는 우리 글자가 없으니까, 셋방살이 하듯이 한자를 빌려다 썼지만, 자기 집이 있는데 더 이상 셋방 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께서도 한자로 쓴 광화문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겁니다. 외국 사람들이 광화문 앞에서 사진 찍으면서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지 않겠습니까?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한글이 좋지 않겠습니까? 어쩌고저쩌고…….’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운동은 원래 그런 거다. 한글 운동은 주시경에서 발원했다. 처음에는 국문 운동이라고 했다. 국문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보급하는 것이 곧 국문 운동이었다. 그러다가 국문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자연히 한글 운동이 되었다. 한글 운동은 우리말글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보급하는 운동이다. 한글 운동이라고 해서 글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어 학회가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표준어를 사정하고 외래어 표기법을 만들었다. 조선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으며, 말살 위기에 처한 조선말을 보전하기 위해 사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조선어학회사건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중지되었다. 조선어 학회 관련자들은 모두 옥에 갇혔고, 한글 운동은 임종을 고했다. 조선어 학회 회원들을 심판한 일제 판사는 한글 운동을 심모원려한 독립운동이라고 했다.

 

극적으로 해방이 되자, 다시 한글 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어를 몰아내고 조선어를 되찾았다. 시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문맹을 깨쳐야 했고, 근대 국가의 시민으로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자격 요건 중 하나였다. 투표 하나만 생각해도 그렇다. 후보 이름을 알아야 거기 동그라미를 칠 것 아닌가?

 

해방 후 한글 운동의 선두에 섰던 최현배 선생은 1951년에 ?우리말 존중의 근본뜻?이란 책을 냈다. “말은 사람의 정신의 표현이요, 겨레말은 그 겨레 의식, 겨레 정신의 표현이다.” 그러고는 국어 운동의 다섯 가지 목표를 말했다. 첫째, 깨끗하게 하기. 둘째, 쉽게 하기. 셋째, 바르게 하기. 넷째, 풍부하게 하기. 다섯 째, 널리 퍼지게 하기.

 

깨끗하게 하기는 우리말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쉽게 하기는 한글로 쉽게 한다는 것, 즉 한글 전용이며, 바르게 하기는 우리말글을 올바르게 쓰자는 것이고, 풍부하게 하기는 우리말글을 많이 써서 풍부하게 키워나가자는 것, 널리 퍼지게 하기는 우리말글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느는 것이 바로 그것이고, 편리한 문자 한글의 혜택을 세계인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거였다.

 

60여 년이 지났지만, 그다지 된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말글을 바르게 쓰는 것도 우리말글을 풍부하게 하는 것도 우리말글을 순수하게 쓰는 것도, 쉽게 쓰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어, 외국어와 외래어의 범람에 우리말글은 익사 직전이다. 영어 공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우리말글 경시 풍조마저 생겼다. 상황이 이러니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할 말이 많아도 너무 많지만,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딱 하나만 얘기하자.

 

테이크아웃이란 말은 포장구매’, ‘포장판매로 순화했다. ‘매니페스토참공약’, ‘얼리어답터앞선사용자로 다듬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포장판매, 참공약, 앞선사용자를 알지 못한다. 우리말을 쉽게 하고 우리말답게 하려면 이렇게 순화한 우리말이 있다는 것을 일단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당분간 글을 쓸 때, 괄호쓰기를 하자.

 

후보들이 참공약(매니페스토)을 지키는지 잘 살핍시다. 커피는 포장판매(테이크아웃)가 조금 싸요. 앞선사용자(얼리어답터)들의 의견을 존중합시다. 서클 대신에 동아리를 쓰고 리플 대신에 댓글을 택한 것처럼 우리말글을 하나라도 더 써 보자!”

 

- 이 글은 민족21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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