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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룸살롱, 술판, 난리쳤다" 설민석 주장은 무엇이 틀렸나

봄뫼 2019. 2. 28. 22:17

"3.1운동 때 룸살롱, 술판, 난리쳤다" 설민석 주장은 무엇이 틀렸나

민족대표, 태화관, 변절 등 3.1운동 궁금증 팩트체크


이 글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3.1운동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한 팩트체크 글이다.

1. 민족대표 33인은 어떻게 독립선언에 참여했나

2·8독립선언을 준비하던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은 민족 지도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동시에 지원을 요청하고자 학생대표 중 한 사람인 송계백을 경성(서울)으로 급파하였다. 송계백은 현상윤을 만나 사각모 안에 숨겨온 선언서 초안을 보였고, 학생들의 움직임에 크게 자극받은 현상윤은 선언서 초안을 최린·송진우 등에게 보이고, 1월 20일경 권동진·오세창·최린 등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를 찾아갔다. 오래 전부터 독립 운동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던 손병희는 이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을 결의했다.

이들은 운동을 대중화하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는 인사들과 접촉을 시작했다. 대한제국시대 구 관료계의 윤용구·한규설·박영효·윤치호 등이 참여를 거부하자, 손병희는 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운동을 이끌기로 결정했고, 때마침 관서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기독교계 인사들과 연결되었다. 2월 11일경 정주의 이승훈이 상경해 최린과 협의하여 천도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거사를 준비하면서 불교 및 유림과도 접촉을 시작했다.

2월 24일 밤 최린이 한용운을 방문하여 진행 상황을 설명하자, 한용운은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히며 불교계 동지들과 의논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일이 촉박하고 일제의 감시가 심해 결국 불교계에서는 한용운과 백용성 두 사람만 참여하게 되었다. 불교계 인사들이 대부분 깊은 산 속에 자리한 사찰에 있는 관계로 빨리 협의를 할 수가 없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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