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화

'틀리다'에 대한 오해

봄뫼 2020. 3. 8. 17:01

  202031일자 서울신문 이경우의 언파만파를 읽었습니다. "'틀리다'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을 보면서, 사람들이 틀리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틀리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점잖은 조언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했습니다.

 

익숙하거나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의 것들에는 이처럼 옳게 보려는 태도가 있다. 편안함과 안정감도 느끼고, 범위를 넓혀 올바른 행동이라는 의식에까지 이른다. 반대로 낯설거나 자신의 영역 밖의 것들에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다. 이것은 다시 그릇되고 잘못된 것이라는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틀린 것이며 물리쳐야 하는 대상이 된다.

틀리다는 말에도 이런 태도의 흔적과 뒤끝이 있다. 즉 다른 것, 낯선 것은 곧 틀린 것이기도 했던 시절이 묻어 있다. 그래서 틀리다는 말은 때때로 다르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피부색이 틀리네”, “내 시계는 네 시계와 틀려”, “틀린 그림 찾기같은 표현에서 틀리다다르다이다.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이런 틀리다그릇되다’, ‘어긋나다’, ‘잘못되다같은 뜻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맥락상 다르다는 의미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302027007

 

   여기까지는 틀리다를 사용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격하게 공감하실 겁니다. 그래 나도 틀리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 이 기자님은 뭔가를 강조하고 싶을 때, 의도적으로 '틀리다'를 선택한다고도 설명합니다. 시계 자랑을 하고 싶은데, '내 시계는 달라'라고 하면 뭔가 밋밋해서 '내 시계는 틀려'라고 한다는 겁니다. ‘내 시계는 달라.’라고 하면 밋밋하고 내 시계는 틀려라고 하면 청양고추라도 친 효과가 나는 걸까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피부색은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것이다. ‘틀렸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찜찜한 데가 있다. 우려하는 것처럼 누구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로 쓰라고 지적하는 건 지나치게 국어사전의 일반적인 뜻풀이에 기댄 결과다.

 

   ‘틀렸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고 오히려 이런 지적은 지나치게 사전의 뜻풀이에 의존한 태도라고 지적합니다. '그의 미친 연기력'이란 표현에서 '미친'은 그가 미쳤다는 게 아니고, 연기를 아주 잘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긴 손흥민 선수가 혼자서 공을 몰고 70미터를 달려가 미친 듯이 골을 넣었다.’고도 합니다.

'참 잘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잘못했다'는 말의 반어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아들이 양가의 허락도 없이 여자 친구를 임신시켰다는 사실을 고백할 때, ‘잘했다고 하는 아버지도 있지만, 정말 잘했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반어법 정도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이 하는 걸까요?

 

일부 공간에서 틀리다다르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사실은 피부색이 틀려틀리다가 인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더 섬세하게 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까 '다르다'를 쓸 자리에 '틀리다'를 쓰더라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틀렸다고 지적질을 할 일이 아니라, 차라리 사전의 뜻풀이를 더 섬세하게 하는 게 낫다는 겁니다. 이 말은 사전의 뜻풀이를 고쳐서 틀리다다르다를 쓸 경우에도 쓸 수 있고, 혹은 다르다를 강조하는 표현으로도 쓸 수 있다고 풀이하자는 거겠죠.

   문득 너무가 생각납니다. 본디 너무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쓰는 말이었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너무 무리하면 몸을 상할 수 있고,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살이 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보도에서 확진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엉뚱하게도 확찐자도 등장했습니다. 격리 생활의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먹다 보니 살이 확 쪄서 확찐자가 됐다는 겁니다.

   여하간 너무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썼는데,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너무 좋아요, 너무 멋있어.’ 라고 하니, ‘너무는 아무 때나 써도 좋다고 한 겁니다. ‘너무를 너무 사랑한 분들이야 편안해졌겠지만, 사전적 뜻풀이에 충실했던 사람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따랐던 분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에 버금가는 충격이었습니다. 믿고 의지했던 국립국어원의 변덕이 같은 편(?)의 등에 비수를 꽂고 상실감과 패배감을 안겨주었던 겁니다. ', 국립국어원 너마저!‘

‘  틀리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 때는 틀리다가 아니고, ‘다르다를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과 처지는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걸까요? 영어에서 다르다는 different입니다. You are different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는 말이지요. 이럴 때 wrong을 쓰면 네가 잘못했어(You are wrong)’가 됩니다. 영미인들은 differentwrong을 잘도 구분해 쓰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다르다틀리다를 구분하는 게 불가능한 걸까요?

   이 기자님의 생각처럼 틀리다를 틀리게 쓰는 이들에게 너그러움과 아량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제부터는 틀리다를 아무 때나 쓸 수 있다고 섬세하게사전을 고치면, ‘가리키다는 방향이나 대상을 나타내고 가르치다는 지식이나 이치 등을 알려주는 거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하고, 어떤 선생님이 확신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좇다이상 같은 것을 따르다는 뜻이고 쫓다어떤 것을 급히 따르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좇아 도망치는 강도를 쫓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지만 바뀔 수도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면 지켜야 할 교통법규도 공중도덕도 있습니다. 고성방가, 노상방뇨, 쓰레기 무단 투기 등등을 삼가려고 신경을 씁니다. 욕을 먹거나 벌금을 내거나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이 무섭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서로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뚫린 입으로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만 말을 할 때도 불편만 호소해서는 아니 되고, 국어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까다로운 언어규범이라 할지라도 따르고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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